농사펀드 뉴스레터 '에디터가쓰다'
안녕하세요. 새내기 에디터입니다.
얼마 전부터 시간이 나면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곤합니다. 내용은 별다른 게 없습니다. 극 중 주인공인 '고로'는 인테리어 소품을 추천해주는 일을 합니다. 직업 특성 상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일이 많죠. 그렇게 일을 하며 돌아다니던 고로는 배고픔을 느끼면 곧장 밥집을 찾습니다. 이후 모든 내용은 먹는 얘기 밖에 없습니다. 정말 밥만 먹습니다. 풍부한 표현을 구사하며, 밥을 먹습니다. 어쩜 그렇게 맛있게 먹는 지, 밥을 먹으면서 봐도 배가 다시 고파질 정도입니다.
극중 주인공인 '고로'를 보고 있자니 '오늘 난 무엇을 먹었더라'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보니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문득 호기심이 들어 그 타입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와 같더군요.
※ 참고로, 제가 근무하는 곳은 취사 시설이 있어서 조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밖에서 해드시는 경우는 흔치 않아 제외했습니다. 다른 경우의 수가 있다면 또 알려주세요 :)
저는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무조건 안에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뒤처리가 간단한 배달을 시키든지, 가까운 곳에 가서 금방 밥을 먹고 들어오곤 했죠. 근데 이렇게 먹다보면 아래와 같은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내 위장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 고독한 미식가 中 '고로'의 대사 -
이때부터 우리는 '먹기 위한' 여러가지 기준을 만들어서 점심을 고릅니다. 어제 뭘 먹었더라? 아침에는 뭘 먹었지? 어제는 일식, 그제는 양식, 그러면 오늘은 한식. 한식 중에서도 국물? 밥? 국수? 끊임 없이 쏟아지는 점심 선택의 질문 속에 내 위장의 답을 찾기 위해서 점심 시간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결국 가는 곳은 매번 가는 국밥집, 평타 이상하는 쌀국수집, 그나마 괜찮았던 돈까스집이죠.
정말 우리의 위장은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답을 알고는 있을까요? 우리의 고민대로 정말 '먹고싶은 음식'을 찾아주기 보다는, 어쩌면 그냥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좀 다른 얘기를 해볼께요. 얼마 전부터 멤버들 사이에는 도시락 바람이 불었습니다. 각자가 음식을 싸와서 함께 나눠 먹곤 하죠. 처음에는 농부님들이 주신 샘플을 촬영하고 남은 식재료, 혹은 요리 컷을 찍은 후에 남은 음식들을 먹었습니다. 괜찮더라고요. 처음에는 2명 정도가 시작했습니다. 다 같이 먹을만큼 양도 안되었거든요. 그러다가 욕심이 나서 집에서 음식을 해오기도 하고, 안에서 음식을 해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뭐를 복닥복닥 해먹는 걸 보니, 다른 멤버들이 같이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대부분의 멤버들이 안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참 재밌는 게, 밥을 다같이 먹어도 '어떻게 먹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는 집에서 찌개를 끓여오고, 누구는 취사 공간에서 계란 후라이를 해먹기도 하고, 누구는 마트에서 반조리 떡볶이를 사와서 해 먹어요. (저희라고 해서 꼭 건강한 먹거리만 먹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지 못하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가치관은 같이 지향할 지언정,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서 밥을 먹는 습관은 다릅니다) 저도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식사를 같이 하는 멤버들에게 어디서 식재료를 사왔는지, 어떻게 만드는 지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나. 이거 너무 맛있다. 이건 어디서 사왔어요?
멤버. 아니요. 직접 만들었죠! 재료는 마켓에서 사왔어요. 주말에 N의 시장 다녀왔어요.
나. 오 그렇구나. 여긴 뭐가 들었어요?
멤버. 김치랑 두부랑 새송이? 두부 괜찮은 거 있길래 같이 넣어봤어요. 두부가 다했지 뭐~
나. 우와 두부만 따로 먹어볼 수 있어요?
멤버. 네 여기요. 두부만 먹어도 맛있어요.
나. (동공확장) 나... 나도 거기 갈래요!!
결국 멤버의 추천에 따라서 농부님들이 직접 판매를 하시는 오픈 마켓을 가봤습니다. 지금까지 두 군데를 가봤는데, 갈 때마다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옵니다. 그리고 꼭 맛있어서가 아니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식재료를 사오게 되더라고요. 꼭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먹을 거리를 사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매력에 사로잡혀 먹거리를 삽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것은, 내가 먹을 음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진다는 뜻. 요리를 못해도 좋아요. 꼭 신선 식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간식거리를 살 수도 있고, 반조리 식품을 살 수도 있어요. 내가 먹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넓어지는 거죠. (다들 하루에 세 끼는 먹잖아요? 간단히 생각해봐도 하루에 3가지 선택지가 더 나온다는 사실!) 앞으로 점심밥을 먹을 때 이런 시도를 해보시는 건 어때요?
※ 내가 먹는 음식에 뭐가 들었는 지 아는 것! 사람마다 다양한 편익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다양한 먹거리 선택지와 믿고 먹을 수 있는 생산자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큽니다.
우리 다시 '점심러'의 일상으로 돌아와 봅시다.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뭐가 들었는 지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맛 있으면 됐고, 그저 첨가물이 안들어 있다고 써져 있으면 좋아 보일 뿐이죠. 무엇이 들었는 지 모르는 떡볶이를 산 것은 잘못이 아니에요. 요리를 할 줄 몰라서, 가성비가 좋으니깐, 조리하기 편하기 때문에 샀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배고파서 산 거 잖아요. 그건 잘못한 게 아니에요. 관심이 없었던 거죠. 몰랐던 거에요.
그래도 하루 세끼 먹는 밥이 꽤나 크게 우리의 기분을 좌지우지 하는데, 그 중요한 결정을 남들의 손에 맡기지 맙시다. 이제는 좀 다른 식사를 해봐요. 내가 먹는 음식에는 무엇이 들었고,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지 살펴봐요. 앞으로의 한 끼 한 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수 있도록 해봅시다. 어렵지 않아요. 일단 오늘 저녁으로 먹을 먹거리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봅시다. 궁금해해봐요. 그렇게 시작해보는 겁니다.
2018년 4월 10일
좋은 가치를 올바른 방법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강규혁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