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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Sep 22. 2021

10. 생사를 굳이 갈라야 해?

아빠의 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그렇게 찾아왔고, 가족들은 안녕하지 않았다.


죽어있는 사람처럼 눈만 껌뻑거리는 아빠의 모습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머리와 가까운 경추가 다칠수록 사지마비가 풀리지 않아 식물인간처럼 지낼 확률이 매우 높아지며 다친 부위에 따라, 의식은 있으나 말과 글에 자유롭지 않게 된다. 혼자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고, 몸을 혼자 뒤집을 수 없으며, 눈만이 오직 자유로운 그 상황에 모르핀이 없으면 단 한 시간도 견딜 수 없는 그 하루하루를 아빠는 버텨야만 하는 것이었다.


왜 내가 그 중심에 서 있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일은 나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엄마도 동생도 그때는 그저 한발 물러서 있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나였다. 배에 아이를 품은 동생네 가족도 아니었고, 아빠만 보면 눈물에 한숨 짓던 엄마도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눈물이 나지 않은 나에게 떨어진 일들은


- 담당 의사와 상의한 후, 수술을 결정을 해야 했고

- 아빠가 다친 그 부분을 치료할 최고 권위자와 병원을 물색하여 트랜스퍼 계획을 세워야 했다.

- 혹시 몰라 재활치료 병원에 예약을 걸어야 했고

- 불친절한 담당의사에게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기 어려워 친분이 있는 전문의에게 분석을 요청해야 했다.

- 엄마와 교대 시간을 결정하고

- 간병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쩐지 이 모든 일이 모두 예정이 되어 있던 일들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담담할 수는 없었다. 나라는 캐릭터가 살아있는 책 한가운데에 있을 뿐, 목차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일은 치러져야 할 판국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물리적으로 나를 필요로 했던 건 매우 자명한 일이었는데, 사실 나도 아빠가 필요했다. 나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상황이 필요했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대학 입학 후 나는 엄마 아빠 입맛에 맞는 딸내미는 아니었다. 벽장 안에는 언제나 집을 나갈 수 있는 배낭이 상비되어 있었고, 나는 독립을 꿈꿨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집안에 족쇄같이 느껴져 틈만 나면 탈출을 시도했던 나에게 엄마와 아빠는 나를 돌연변이 취급을 했다.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 같았고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다.


보이지 않은 천륜의 끈으로는 이어져 있었지만, 그저 그 일뿐 나에게는 언제나 다른 세상을 동경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랬다. 나는 재빠르게 그들이 없는 세상을 스스로 지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도움이 굳이 필요 없을 마음을 만들어냈다. 시간은 흘러갔고, 그렇게 각자의 삶에 익숙해져 있을 때쯤이었다.


 가족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는 말이다. 하필 나는  절박함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다시금 가까이   있는 건수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되다  어른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아빠에게 며칠 뒤 수술이 치러졌다.  재활치료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큰 들 것으로 아빠를 휠체어에 앉혔으며, 나는 힘을 줄 수 없는 아빠의 발을 발판에 올려다 놓았다. 무거웠다. 180이 넘는 장정의 발 하나는 온 가족의 무게를 혼자 견뎌온 마냥 토르의 망치처럼 무거웠다.  옴짝달싹 못하는 입술을 떼었다 다시 붙이면 '물'이었다. 빨대를 입에 대어주고 밤이 되면 자그마한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밤이 되면 가만히 아빠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 나만 말했다.

그 길고 긴 밤은 끝날 것 같지 않아 두려웠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 나 미국 가지 말까? "


어둠에서 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


다시 물었다.

"아빠, 나 그럼 가?"


아빠는 다시 소리를 내어

"으...."


이어 질렀다.


나는 그날 밤, 낮과 밤이 이어져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끈이 내 숨통을 조여 오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지루한 인생 한가운데 던져진 나의 목을 서서히 감아가며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아빠는 살고 싶어 했으며 동시에 아빠는 죽고 싶어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가던 내가 생각이 났다.


나는 죽고 싶어 했으며 동시에 나는 살고 싶어 했다. 


인생은 끈덕지게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좀 살아야겠어'라고 외쳤고, 우리는 그것을 못 이기는 척 받아주기로 했다.


그렇게 서른 중반까지 아빠와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나누어 보지 못한 나는 밤을 지새우며 아빠의 '으' 그 외마디 외침 하나를 공통분모 삼아 말을 지어내며 새벽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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