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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Sep 24. 2021

12. 생선 가시 발라내기

이쯤 되면 나보다 아이의 생사가 걱정될 터이다. 


엄마라는 사람은 본인의 길을 찾겠다고 삑삑거리며 브레이커 고장 난 자전거처럼 폭주하는데 그 와중에 아이는 말을 못 했다. 정확히는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태어나 3년 좀 지났을 때 전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아이에게는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필요했다. 아니면 코 찔찔이 어린이집 친구들이라도. 


영어권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이 어른보다 대단히 우수하여 영어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듯이 말을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의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사고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당신들이 그 나라에서 말 한마디 못해 옆 사람 눈치를 설설 보고 있을 때 아이들이라고 그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너희들이 생존이듯 그 어리고 고사리 같은 마음도 ,엄마 뱃속 이후 처음 겪어보는 피 튀기는 '생존'임이 틀림없다. 


주류가 아닌 마이너 인종이 언어 조차 하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는 데, 아이들 역시 약자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리고 영역 표시를 한다. '나중에 온 것도 모자라 병신같이 말도 못 하네?' 어디 한번 건드려 볼까 하고 한대나 쥐어 박거나, 따돌리기 시작했을 때 아니,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그 아이와 말을 섞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처음 느껴보는 서늘한 공기에 간담이 얼어만 간다.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 그리고 해가 계속되었을 때, 어른 너는 어떨 것 같냐고 되묻고 싶다. 


당연한 것은 없다. 


이 모든 것을 겪어 낸 아이가 조금씩 뱉어놓는 영어를 보고 '따놓은 당상'이라니, 이미 마음속은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살포시 닫아버린 마음을 부모가 면밀히 들여다보느냐. 그것도 아니다. 어른 나 자신도 나이 먹어 고향 떠나 온 나라가 무어가 편안할까. 당장 마트만 가도 식자재를 발음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주유소는? 운전면허증 발급은? 집은? 아이 학교 등록은? 집 밖에만 나가면 온통 '하이'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자신의 그림자에 묻혀 어른도 어른답지 못하게 옹졸해져만 간다. 아이들이 감내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다는 말을 5년 뒤 아들이 이렇게 정정해 주었다. 


엄마, 자연스럽게 가 아니고 열라 힘들게야, 천국 가고 싶을 정도야




아이를 유치원에 등록하고 나서 다음 날 아이는 등원을 거부하였다. 똥이 마려운데 말을 못 해서 바지에 지리고 온 것이다. 어디서 콤콤한 냄새가 난다 했는데... 이제 겨우 기저귀를 떼고 낯설다 못해 한 번도 보도 못한 인종들까지 함께하니 아마 우주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이었을게다. 뿐만 아니라  '물 주세요' 한마디를 하지 못해 입에 마른 버짐이 가득 피어버린 아이를 보고 내 속도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매일매일 빨간 날이 언제냐만 세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짊어진 가방의 무게처럼 당시 우리는 각자의 삶의 무게에 허덕거리고 있었다. 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를 맡겨두고 나면 늘 그렇듯 근처 카페에서 학교 과제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아이와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숙제 한 장 독해가 어려워 구글 서치를 옆에 켜 두고 머리를 잡아 뜯었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을 피력하라는 데, 무슨 의견까지 가겠는가. 그냥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더니 이건 뭐, 사라진 대상포진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참으로 어렸다. 

유일하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하는 그 시간만 기다렸다. 

한국 사진을 보면 작고 동그란 눈에 눈물이 한가득 담겨 그렁그렁했다. 

"엄마 이건 신우 고오... 이건 지선이야... 엄마 그런데 나 언제 한국 가?"


몇 권 가지고 오지도 못한 한국 책을 신줏단지 모시듯 자기 전에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만 했다. 도시락을 싸주면 과일 한 조각만 간신히 건드리고 왔던 아이의 몸이 앙상하게 야위어 갔다. 얼마 되지 않아 구내염이 걸려 입 안에 아무런 음식도 대지 못했을 때, 아이는 잠이 들다 깨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간신히 내쉬는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아서 코에 손을 대고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런 구내염을 격주로 치르고 나서야 아이는 깨달았다고 한다. 


미국 유치원 및 학교는 참 학부모 참여 행사가 많다. 거의 가지 못했는데 그게 한이었는지 꾸준히 이야기 한다. 


'아... 이 엄마는 쉽게 한국으로 가지 않겠구나..'

그리고 체념했다. 그 후 아이의 말 수가 눈에 뜨이게 줄기 시작했다. 말을 하기 거부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아이는 살과 말을 잃어갔다. 


꿈을 꾸겠다는 엄마의 그 잘난 소신과 신념 밖 낭떠러지로 아이는 그렇게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고, 나 역시 보고도 모르는 척, 모든게 '자연스럽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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