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t Scent Sep 14. 2023

인성 빠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앞이 캄캄한 정전이었다. 


차고가 열릴리 만무하고 냉장고에 있는 모든 신선음식이 쓰레기로 변하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만 먹을 수 없고, 덥고 습하지만 편안하게 샤워를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우리는 불안하다. 이 때 오롯이 살아나는 감각이 있는데 바로 미각이다.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아 뻘뻘 흘리는 와중에도 냉수는 뭐라도 섞었나 싶게 달다.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것 위에 덮어지는 강렬한 자극이 때때로 상황을 모면케 한다. 


오래했다던 사회생활안의 인간관계도 정전과 같다. 알 것 같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 깜깜한데 이 조차도 겉모습에서 보여지는 거짓 인성을 파악하기에 급급하다.사람. 사람. 사람. 

그래서 와중에 좋은 사람,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의 가치는 정전 속의 미각이자, 트렌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같다(아니 왜 여기서 그게)

그렇다 오늘은 미국에 건너와서 정말 어쩜 이래 싶을 정도로 인성 빻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인데, 말이 고와 결이 다름이지 사실 손에 칼만 안들었을 뿐 순 감정 날강도 같은 색히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물어가는 폐타이어 안의 소라게들. 

남의 집도 빼앗고, 남의 살도 파 묵고 돌아다니는 사회악같은 존재라 생각하기 쉽상이지만 의외로 지천에 널려 있는 이웃들이 목에 칼 끝을 겨누기도 한다. 굳이 미국을 들지 않더라도 이민사회는 참 좁기도 좁아 대부분의 한인 커뮤니티는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말씀으로 대동단결 아래 집사님들은 종교를 가장한 그들만의 리그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거짓 교양도 서슴치 않는다. 물론, 좀 튄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닭모가지를 치는데 그 안의 나는 백숙을 위한 암탉이었다. 더러 계시는 신실한 분들까지 묶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참으로 일관되게 만화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멀리에서 아이와 둘이 뚝하니 떨어진 나는 한국교민들 사이에서 좋은 먹잇감이었다. 어디가서 안주감 삼기 딱 좋지 않은가. 무슨 사연이기에 (그 때 딱, 방영하던 드라마가 '동백꽃 필무렵'으로 공효진이 혼자 아들을 키우는 배경이었고,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여자가 덩그러니 아들 하나 데리고 이 시골 동네에 들어와, 기도 안 죽고 살아가는 게 참 꼴 보기 싫었는지, 불어나는 눈덩이 같은 소문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 날은 땀이  송글송글허게 나고, 어느 때와 같이 별 일 없이 무난히 넘어가는 하는 날이었다. 한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뚱했다. 워낙 말이 많은 아이라 더워서 그러나 싶었는데 갑자기, '엄마, 왜 엄마는 특이해? 그리고 왜 나는 혼자야? 나랑 놀지 말라고 누가 그런 거 같던데 엄마.' 별 가당치도 않는 소리를 자분자분 내뱉는게 아닌가. 누군가가 자기랑 놀지 말라고 했단다. 

바로 옆집에 동갑인 한국인이 살았고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먼 타국에서 바로 옆집에 붙어 있는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음식도 나누어 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의지가 되겠구나 싶어 둘도 없는 사이로 몇 달을 지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돈다고 했다. 사연 많은 여자라나. 거기까지면 오케이, 거기에 더한 이상야릇한 소문까지 무성했다. 눈도 안 마주쳐 본 동네 아저씨까지 엮어서 입 밖에 담기 어려운 말이 돌기도 하고(우웩), 아이를 혼자 키우기 때문에 아이도 뭔가 좀 이상해 보인다더라니(아니 우리 아들이 어때서),여자가 저러고 사는 건 독해 빠진게 분명하니 조심 하자 말 섞지 말자 등등이었다. 이런 말들을 하나하나 전해주는 그 아이를 나는 친구로 착각했던 것 같다. 적지 않게 마음의 상처를 받은 건 물론이지만 이 말을 굳이 전해주는 저의도 알수가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두 그렇게 호형호제하며 살았던 친구 아닌 친구가 퍼뜨린 말들이었다.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온 소문의 굴레는 쉽사리 벗어지지 않았다. 사실 가장 상처는 이렇게 '너의 대한 소문이 이렇다더라'며 위로차 건네는 말들이 모두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무마하기 위함이었고,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며 문을 나서며 꼭 안아주던 따뜻함이 뚜렷한 거짓임을 깨달았을 때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바로 옆집은 가혹했다. 

쉼이고 터전이었던 집 대문을 걸어잠그고, 서로 마당을 오가며 돌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소리없이 증발해 버렸다. 바닥턱이 닳아져라 수 많은 집사님들이 옆집을 오고가곤 했고 그럴수록 근거도 없는 소문은 일파만파 펴져버려 미용실에도 식당에서도 한인마트에서도 종국에 길바닥에 버려진 나는 천하에 없는 썅년이자 화냥년이었다. 


다들 착각할 수 있겠다. 

미국 이야기를 하는 거다. 미국 안의 좁디 좁은 한인 사회에서 버려진 소라게는 다시는 누군가와 밀도 높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미국내 사회에서도 부침은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백인이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아주 없을 수는 없었을 거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주일수록 백인들의 자기 말만 하는 성향은 두드려지는데 이 여자도 대단히 그런 성향이었다. 직급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하대는 그 공간을 참으로 거북하게 만들었다. 

삶은 다양한 군상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폭도 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성 빠가인 사람들은 오히려 내 머릿속의 꽃밭을 하나하나 뭉게 주었다. 

선물이었다. 


인간 놈들은 항상 땅 속의 깊이 내린 뿌리를 읽지 못한다. 

때문에 마음의 허함을 명품으로 휘감기도 하고, 자신의 무식함을 자식 교육으로 몰빵하는 위험한 투자를 서슴치 않으며 위로 받지 못한 마음은 평생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상 어른으로 자라난다. 이렇듯 내가 만난 또라이들은 스스로에게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을 남의 뒷담화로 남의 탓으로 결국 스스로의 파국을 면치 못했다(물론 그 파국을 기다리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그래도 어디선가 살고 있으면 떠내려 오는 시체를 발견할 날이 오긴 온다.). 욕과 욕받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함에 딱 그만큼만의 성장이 허락되고 점점 채우지 못하는 구멍에서 찾은 인생의 의미는 왓더헬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던지는 일관된 방관과 무시, 그리고 꾸준한 내 삶의 영위는 '가장 차가운 복수이자 소리없는 칼부림'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채워지는 견고한 모래주머니 앞에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인성 빠가일지 모르겠다. 돌고 도는 인생이니까. 하지만 내가 떠내려 가는 시체가 되고 싶지 않기에 상대방에게 칼이 될지 모르는 말을 입으로 쑤셔 넣어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나는 솔직하니까'라 포장한 무례함도 넣어두도록 하자. 이상하게도 욱여넣는 칼에 나는 다치지 않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다. 




이전 12화 나는 왜 화가 나 있었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