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나라에 입성한지 어언 8년이 되어가는 걸 보니 10년도 금방 가겠지 싶다. 바뀐다는 강산은 가만 보니 고새 몇번이고 바뀌었고 듬성듬성 나기 시작하던 새치도 이젠 어엿한 흰머리로 자리 잡아 하나씩 잡아 뜯다가는 탈모를 면치 못할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각자에게 드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나의 세월은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데 드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데에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학급회장만 10년정도 한 것 같다. 반 친구들에게 나는 좀 괴짜이지만 웃긴 반장이었다. 방송반에서 틀어주는 당시를 풍미하던 가요가 나오면 밥을 먹다가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곤했다. 아마 미세하게 있던 관종끼가 그 때부터 싹을 틔운 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니, 사람에게 관심 받는 걸 좋아했던 나는 '아니다'라는 말을 해야할 때가 오면 그 앞에 '미안하지만'을 항상 붙여 꺼내곤 했다는 말을 했다는 해야해서 였을 것이다. 나에게 '미안'이라는 말은 그라데이션과 같은 채색이 들어가 있었다.
정말 미안한 상황에서의 쏘리는 그렇다 치고, 별로 그래야 할 상황이 아닐 때 뱉어야 하는 쏴리는 내면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한번은 학급에 한두명은 있는 일찐 시다 같은 애들, 일명 날라리라고 부르는 아이들( 때론 담배도 피우고, 담배빵도 하고, 술도 하고 공부는 안하는 그런 부류)이 거는 의미없는 기싸움 같은 게 있었다. 아마.. 복도에서 물걸레질하고 있던 바닥에 쉼없이 가래침을 뱉는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그날도 여전히 바닥을 닦고 있는 내 앞에서 보라는 듯이 침을 뱉었고, 나도 모르게 대걸레질이 그 아이 실내화에 닿았다. 나는 그 때 기싸움이고 나발이고 1초만에 '미안해...'라고 말했다. 별로 미안하지 않았는데 나왔던 그 쏴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마 나는 맞기 싫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그 무리 중 하나에게 밉보여서 싸가지 없는 반장년이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밟아주자 루틴에 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쏴리만 하면 되니까. 살짝 상황만 모면하면 나중이 편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어설픈 그 나이대의 판단이었으리라.
아. 덧붙이자면 나는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반장이 된 케이스가 아니었다. 고쳐 말하자면 학급회장이 되기에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베이스로 깔고, 다수의 반 아이들의 웃음을 사는데 익숙하다 보니 어영 부영 그게 편하게 된 것 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수 많은 아이들에게 인사가 가능하지만 정작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가 아쉬운 아이였달까. 아이들과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보다야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지시사항을 받는게 더 이득이라는 묘한 계산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광대로 있다가 반으로 돌아가면 공부를 하면 됐고, 광대는 대체적으로 적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수행평가나 하자라는 심산이었다. (듣고 보니 되게 전교 1등을 한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야기가 많이 돌아왔는데 나의 이렇듯 자라온 환경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임쏘리를 남발해도 내 평상시의 삶과 이미지에 타격이 없는 한 그도 괜찮은 채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다는 말을 길게도 썼다.
이렇게 꽤 오랜 시간을 살다보니, 누군가에게 '죄송하지만' 라는 말을 시작에 붙여 쓰는 상황이 상당히 많아졌다. 나는 여전히 나의 안녕보다는 남의 안녕이 중요했고, 그게 예의라는 생각으로 수십년을 달려온 터 였다. 이러한 습관이 미국에 왔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마 타지라서, 이민자라서 더더욱 사람들의 이목에 목이 움츠러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다양한 인종이 같은 언어를 쓰며 비슷한 목적으로 다니는 회사에서도 '아임 쏘리'와 '암 쏴리'의 무게는 양 날을 가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새로 들어 온 팀원에게 나는 내 역할을 인수인계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new hire였기에 친절하지는 않아도 빠지는 것 없이 트레이닝을 해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같은 말을 3번정도 반복했는데 참을성이 많이 없어진 나에게 나에겐 최선의 숫자였달까. 여하튼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라는 일이었고 new hire는 마감을 쳐 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즈음에 다른 법인에서 전화가 왔다. 그 신중을 기했다는 숫자가 이상하다는 소식이었다. 다시금 보고 또봐도 숫자는 이상했다. 큰 액수가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었기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하필 집에서 근무한다는 new hire에게 전화를 거니 본인이 절대로 맞단다. 절대 그 입에서는 '내가 실수 했어의 의미로 하는 아임쏘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만회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녀를 이해하는데에만 3시간 넘게 소요되고 있었다. 빠가사리라는 말이 입밖에 거칠게 튀어 나왔다. 뉴욕으로 출장을 간 팀리더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이 숫자에 대한 진의를 설명하고 보고를 했다. '아임 쏘 쏘리'를 써가며 말이다. (무려 내가 한 잘못도 아닌데!) 그리고 다시 new hire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3자 전화대면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팀장과 30분 설명 및 보고 끝에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아임쏘리'를 딱 한번 썼다.
자신의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녀에게 아임쏘리는.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미국에서 길을 걷다 부딛히며 자주 듣는 이 말은 미국인들을 갱장히 젠틀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한다. 심지어 이 말은 2가지의 의미가 있다. 한가지는 '대단히 유감이다'라는 의미와 ' 미안하다'는 말인데 암쏘리는 전자에 가깝다. 후자는 암어펄러자이즈'를 쓰는데 이 말은 참 듣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저 일련의 상황들은 후자인 apologize를 쓰는 게 맞을 터였다. 장담하는데 미국에서 후자를 듣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나는 참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거 맞아?'라는 말을 꽤 자주 달고 살게 되었다. 미국도 회사는 회사라, 일을 하는 사람에게 더 일이 가는 건 비슷하다. 그럴 때 내 몫이 아닌 일까지 쳐내는 일이 간혹 있는데 이 때 잠시 넋 놓고 있다가 '어 내가 미안'하고 그 일을 잡고 하다간 퇴사 직전까지 그건 내 일이 되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가 그랬다.)
여튼 나이 들어가며 좋은 건 참 많고도 많은데, 내겐 미안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는 습관적으로라도 내 뱉는 그 말을 하지 않고도 삶은 꽤 부드럽게 영위 된다는 사실이다.
방금, 아들 학교에서 꼭 사인을 해서 보내야 하는 서류가 있었는데 사는데 바쁜 애미는 그걸 깜빡하게 보내지 못했더니 반에서 자기만 전자 기기를 사용하지 못했단다(하...) 나는 또 머리를 쥐어 뜯으며 아이에게 '미안해'를 스무번이고 백번이고 되뇌였다.
하여튼 되게 언행일치 안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