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라는 숫자는 셋보다 적지만, 하나보다는 안정적이고 둘의 반보다는 어쩐지 덜 어설퍼 보인다.
달력에 있는 날짜를 하나씩 검정 마크를 해가며 지우다 보면 어느새 보이는 30과 31 사이는 한 달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보다 올해도 이렇게 가버림에 나이를 읊어보게 마련이다.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아이와 함께 하는 이야기는 많은 것이 숫자와 관련되는데, 내 나이를 기억도 못해도 아이의 나이가 설프게라도 기억하는 게 애미인 모냥이다.
아이가 5살 때쯤 이야기인 것 같다.
이제까지 걸어온 학문의 길은 일절 무시한 채, 그 당시 직장을 다닐 때면 육체적으로 고단하기 일쑤였다. 많지도 않은 기계는 어찌나 고장이 잘 나는지 하루 걸러 하루 제대로 돌아가면 다행이었다. 그 마저도 돈을 주고 기술자를 부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 끝 벽에 붙어서 개미같이 왔다 갔다 하며 기름은 잘 새는지 상품 모양은 제대로 나오는 건지 하자율이 얼마나 나오는 건지 보곤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찝찌름하게 습기 가득한 열기가 훅하고 어퍼컷을 날리는 날이었고, 에어컨 하나 없는 공장에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음으로 하루가 유난히 길다 생각했다. 작동을 할 때마다 잔뜩 불은 젖에서 모유가 찍찍 나오듯 기계도 불어 터진 기름통을 부여잡고 바닥에 기름을 뱉는 중이었다. 아무리 쑤셔봐도 이유는 알 수 없었고(알턱이 있나. 전구도 못 가는 주제에), 기술자에게 전화는 해야겠고 해서 작동을 멈추고 플래시를 켜들었다. 바닥 쪽에 기어들어가 외운 매뉴얼대로 순서를 맞춰 엔진 쪽에 손을 댔다. 뜨거운 열감이 와락 손바닥을 태울 듯이 달려들었고 작동을 한 다음에는 심장 고동소리를 듣는 듯, 귀를 대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거 아는가, 기계도 마치 사람과 같아, 쌕쌕하는 소리가 들리면 열이면 아홉 그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퍼지곤 한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20대 여느 젊은이 같이 풍풍하는 소리는 앞으로 서너 달은 무리 없이 가겠다는 뜻이고, 기름관 사이사이로 벌어지는 틈에서 찔찔 새는 무의미한 액체는 한 일주일간은 날 엿맥일 예정이다(납기일을 못 맞춘다는 말씀)라는 뜻이다. 그날 기계 3은 유난히 씩씩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컸고, 나는 엔진 근처 연료통을 들여다볼 요량으로 바닥에 큰 들통을 놓았다. 그렇게 한번 쿵, 두 번 쿵쿵, 세 번 쿵쿵쿵 쿠구구구구구쿵쿵 이상했다. 소리가.
왓 더뻑.
갑자기 기름통이 역류하며 산사태같은 썩은 기름이 온몸을 덮었다.
그냥 기름이 머리부터 발끝을 덮어 고쳐신은 운동화까지 덮었다. 뭔가 브라가 축축했다. 팬티도 오줌 싼 느낌이지만 좀 더 걸쭉했다. 머리카락도 찐덕찐덕 레고머리처럼 하나의 껍데기가 되었다. 와. 당황했달까 아니면 무슨 생각이었을까. 촉촉이 젖은 나는 기계의 일부분 같았다. 그대로 오분을 멈추어 섰다. 작업자들도 적지 않게 놀랐던 모양이었다. 여분의 옷과 속옷이 없었던 나는 그대로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일분이 삼십 분 같이 느껴졌고 자꾸 기름 냄새가 온몸을 장악하여 아무리 벗겨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좀 절망적이어야 하는데 내 걱정은 오로지 이대로 아이를 어떻게 데리러 가지? 였던 것 같다. 그대로 차에 올라타자니 엑셀 한 발을 디딜 때마다 운동화에서 기름이 쭉 하고 나왔다. 짠다고 짠 옷가지에서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쩐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완벽했다. 어쩜 빼도 박도 못한 내 인생 같지 싶어 어쩜 와 나 시발롬거가 저절로 나왔다.
집에 돌아가 초록색 이태리 때밀이로 박박 한두 시간 넘게 냄새를 벗겨내고 나니 저녁 8시가 넘어갔던 것 같다. 빡빡 밀어댄 피부가 성할리 없었고, 벌겋게 피가 맺힌 살갗으로 배고파 내 허벅지에 딱 달라붙어 맴맴거리는 아이를 두고 쌀을 안치고 국을 끓였다. 정확히 기억난다. 그 국은 미소국이었다. 그리고 곧 엎어질 예정이었다.
그날 저녁, 기진맥진했던 나도 유난히 날이 섰다. 괜찮다 다독여도 그날만큼은 누군가 해 준 밥이 먹고 싶었고,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사 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미국은 대부분의 식당이 8시 정도면 문을 닫는다.) 내 입을 넘겨 들어갈 밥맛은 없어도, 아이 입에는 쌀 부스러기라도 넣어야 한다는 굳이 그런 애미의 마음이었을까, 참 별거 없는 반찬에 국 그리고 밥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아이가 깨작거리는 게 영 눈에 거슬렸다.
분명 배고프다고 징징거렸던 아이였기에 쓰러질 듯 피곤해도 입에 한 입이라도 넣어야 내 배도 편해, 아이 입에 욱여넣었다. 퇘 하고 뱉었다.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봐 저 거봐. 이거 저거 봐봐. 또 시작이다. 저 금쪽이 색히. 마음으로 하나를 세었다. 둘도 셋도 그러다 이성의 끈을 놓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의 새끼가 말이야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 배고프다고 해서 해줬더니 이 모양으로 쳐 먹을 거면 갔다 버려!'
그런데 얘 진짜 버리러 간다(와, 정말 환장하겠네). 지금 생각해 보면 버리라고 해서 버리러 갔을 뿐인데, 나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한 서른다섯 살 정도로 생각했었나 보다. 그날따라 빡이 돌아버리다 못해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리고 단전에서 깊이 끌어올린 육성으로 온 목청 다해 소리 질렀다. '야아악!!!'
그런데 어디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 씨 (와 이 놈 봐라) , 왜 엄마는 소리를 질러! 내 이름을 부르란 말이야 이름 몰라 이름? , 먹기 싫다고!'
나는 밥그릇을 엎었다. '그럼 먹지 마 한 톨도 먹지 마'
그리고 아이는 작디작은 주먹으로 식탁을 탕 하고 내려쳤다. '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아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악을 쓰며 울어댔다.
나는 쥐고 있던 주걱을 냅다 대각선 벽으로 패대기쳤다. 쩍 하고 두 동강이 났다.
위험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이젠 주먹으로 애를 후드려 팰 것 같은 스스로의 광기를 나는 보고야 말았다.
왠지 둘 중에 하나는 죽어 나갈 것 같아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바로 옆 화단에 쭈그려 앉았다.
어쩐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새어 나오는 기름처럼 눈물도 찔끔찔끔 나다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맞춰 와락 하고 쳐 울었다.
아마도 공장에서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가 보다 하고 운김에 조금만 더 울자 했다.
고개를 쳐들어 보니 인공위성일지 모르는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번쩍하는 소리와 빛이 들렸다. 사이렌 소리였다. 점점 가까워졌고, 그 소리는 우리 집 앞에서 멈췄다. 경찰이었다.
뭐지. 하고 집에 들어가 보니 웬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집 현관은 2개로 나뉘어 있었고, 나는 그중 화단과 가까운 문으로 나가 울던 중이었다. 아마 아이가 다른 문을 열어 사람들을 들어오게 한 것 같았다.) 당황하던 차에 경찰이 내가 아이 엄마냐고 물었다. 그렇다 하니 양옆으로 2명의 경찰이 에워싸고 나와 아이를 분리시켰다. 방금 울음을 멈춘 나는 똥꾸멍까지 타들어갈 듯 긴장한 척추를 세우고 무슨 일이냐 물어보기 시작했다.
바로 옆 이웃은 말했다. 네 아이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고 하니, 엄마가 화가 많이 나서 집을 나가 버렸으니 제발 나 좀 살려달라는 부탁에 경찰을 불렀다고. 하.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열기가 가득 찬 날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동 폭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찰은 흙이 묻은 신발을 신은 채로 집 안을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엎질러진 미소국 사발. 두 동강이 나 버린 주걱 그리고 사방에 흩어진 밥알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그때, 아이의 거동이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그림책을 가지고 왔다. 그러더니 경찰 앞에서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신나게 색칠을 하기 시작했다. 괜찮냐는 경찰 말에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분리된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더니 안아주기 시작했다. 아. 아이는 알았던 것이다. 이 사단이 우리 둘을 갈라 놓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경찰들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가 싶더니 아이에게 질문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괜찮으냐. 엄마가 폭력을 가했느냐부터 시작해서 밥을 못 먹었냐 배고프냐 엄마가 밥을 안 줬냐 등 한참 동안 몹쓸 미친 애미로 만들었다.
가만 들여다보니 질문을 해도 해도 해맑은 아이의 얼굴을 보니,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도 될 일처럼 여겨졌는지, 나에게 단 한순간도 아이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신신 당부의 말을 하고서는,반나절 같은 한시간이 지난 뒤 경찰은 돌아갔다.
해프닝이 아니었다. 나는.
두 다리에서 힘이 빠진 나는 목젖 어딘가에 얹힌 밥알이었을까, 화장실에 들어가 젖 먹던 힘까지 토를 했다.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토를 떼어내고 기진맥진하고 바닥에 앉아 있을 때쯤 아이가 곁에 맴돌았다.
'엄마, 미안해요'
아이도 울었다.
자기도 경찰이 들이닥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다.
까딱하다가는 모자간 생이별을 하게 생겼었으니 아이도 본능적으로 그림책을 펴 들고 보란 듯이 경찰 앞에서 크레파스를 박박 그었으리라.
태어난 지 오년밖에 안된 아이가, 어미가 그 한 우주였을 건데 그 또한 자그마한 가슴이 파르르 떨렸을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온몸에 진동하는 기름때 냄새와 함께 방금 쏟아낸 토 냄새까지 합해져, 눈을 뜰 수 없을 어둠에 사로 잡혔다.
피곤했다. 사는 게.
잘근잘근 경찰이 밟아댄 바닥을 닦고, 주섬주섬 뿌려진 밥알을 주워내고 두 동강이 난 주걱을 주워 쓰레기 통에 넣었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악을 쓰다 땀범벅이 된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부엌으로 가 믹스커피 한 봉지를 탔다. 어딘가 처박혀 있었을 건데 용케 찾아내 뜨거운 물에 가루를 넣어 휘휘 저었다. 엄마가 생각이 났다. 어느 기억 편에 엄마는 아침에 식탁에 오도카니 앉아 뜨거운 믹스커피를 담은 잔을 두 손에 쥐고 있었다. 엄마도 이리 삶이 고단했을까. 첫 모금에 들큼한 익숙한 더위사냥 맛이 났고 두 모금에 드디어 내쉬지 못한 날숨이 나왔다. 그날은 그렇게 끝이 나야만 했다. 딱 공장에서 끝이 나야만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끝이 났어야만 했다.
그도 아닌 그날은 참. 길고도 지리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 다음 날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인생이 이리도 공평하게 힘든거면, 그게 맞는거면 좀 확인이라도 시켜줬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그냥 젠장 이번 생은 똥망. 이러면서 또 어떻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만 이렇게 힘든가 보다.
어쩐지 그 날 하늘은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