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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02. 2024

핑크빛 무덤 앞에서

슬몃 불어오는 바람에 묻혀 있는 장소가 많다. 


세상에 둘만 있을 것 같이 깔깔거리며 홍대 어귀를 휘잡고 다니며 그 옆에 아이는 없을 것 처럼 떠들어 대던 우리 둘. 


너희가 생각하는 엄마들의 안에는 빛바랜 추억이 아닌, 여전히 통통거리고 생글거리던 여자사람이 들어가 있다. 노산도 훌쩍 넘어 감히 다음번 아이를 담기에는 아기 주머니도 낡아버리고, 축 쳐진 가슴팍을 영혼까지 끌어 담아도 탱글거리는 가슴을 쓸어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생각나기에, 짠하기까지한 기성세대 반열에 오른 우리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여전히 주책맞은 언니들이다. 


아마 엄마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있다면 꽤나 성실하고 끈질기게 여생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희한하게도 내가 가슴 한켠을 도려내 주어도 그다지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몸 한켠에 빨간 불이 들어와 운신이 도저히 어려울 때가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큰 사고가 나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있었던 아빠 곁에서 하얀 밤을 지새웠던 뫼비우스의 띠같이 숨 막히던 밤들. 그리고 총 맞은 것은게 이보다 아플까 싶게 진통에 진통을 거듭해서 낳은 아이가 이제는 뇌 어딘가에서 수많은 스파크를 일으켜 금방이라도 다른 세상에라도 가 있는 것 같아 발작하는 아이의 발을 잡고 기도하기도 여러날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다. 

삶은 우리가 놓는다고 놓아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인생이 마뜩찮다고 성질을 부리며, 저지레를 해 놓아도 무심하게도 흐르는 것이 시간이고, 그 놈의 눈은 침침한게 안약을 쳐 넣어도 뻐걱거리며 그래 너 중년이다 하고 너스레를 떤다.그래서 이 생을 이 짧은 생을 즐겨 보겠다고 너무 짧은 마디로 흐트러지면 다시 궁핍해 지는 삶에 후회하고야 마는 그렇게도 유한한 삶이기도 하다. 


1화에서 아이에게 근사한 삶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고 쓴 적이 있다. 

참으로 여러날 고민을 했던 듯 싶다. 정말로 너와 내 숨이 여기에서 멎어진다면 우리 어떤 모습을 하고 동상처럼 굳어지는 것이 좋을까. 갑자기 볼케이노가 터져 화산재에 뒤덮여 남은 생이 몇초 뿐이라면 너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랑을 할까.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날들을 버텨내야 한다면, 여행을 가는 것이 좋을까? 프랑스 남부? 디즈니 월드? 아니면 한국? 


사람이 말이다. 참 저렇게 뭐라도 할 것 처럼 말하고는 조잔스럽게 집 앞 한발자국을 안 나간다. 


여행을 가겠다 꿈을 꾸던 쩐으로, 피아노 학원도 등록을 하고, 수학과외도 영문독해도 미술도 바이올린도 한 큐에 싹 쓸어담아 계획이라는 것을 해 본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여행계획이 아니라, 언제 죽을 지 몰라 100년을 살 것 같아 성적이라도 잘 받아 놓으면 대학 졸업 후 취업이라도 어디 할 것 같은 그런 계획 말이다. 


거창하게는 말이다. 지금 가서 금방 없어질 기억보다는 네가 언제 숨이 멎을지는 나도 모르겠으니 혹시라도 생각보다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수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구나. 그 순간을 위해 너는 글을 쓰거라 애미는 떡을 썰테니. 이런 바람직하지만 영 재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인생의 방향성 마저 제시하고야 마는 나에게 짐짓 실망도 해 본다. 


나는 아마도 흔들리지 않는 일상속에서 돌출되는 모난 돌을 바위에 쳐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학원에 넣고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나는 엄마라는 틀 안에서 가동할 수 있고, 다음 라이딩을 위해 아이에게 사 놓은 떡볶이를 입에 밀어 넣으며 이번에 들어간 advanced class에서 니가 받은 점수는 점수가 아니야. 이딴 시시껄렁한 잔소리나 늘어놓으며 훈계질하며 일상은 바뀐 게 없다 되뇌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퍼뜩 든 생각은,이러다가 갑자기 우리 둘 중에 숨이 갑자기 멎어버린다면? 

참 재미없는 일상에서 갑자기 누군가 하나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그동안 재미나게 살지 못한 후회로 점철될 수 있을까? 


아픈 아빠 옆에서 같이 아파버리는 늙은 나의 어머니는 그 일상이 그저 그렇기만 할까? 언제 죽기만을 기다리는 아빠의 일상은 그저 빨리 죽지 못하기에 떨이로 넘겨야 하는 그런 하루여야만 할까? 


우리의 후회는.

더 많이 하지 못함에, 더 많이 가지지 못함에, 그 곳에 다다르지 못함에 후회여야 하는 걸까.이 절박한 순간에도.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서 어디 통 크게 욜로를 외치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쪼그리고 앉아 내 그림자 반경만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려대는 나이지만. 


괜히, 일상속에 던져진 너의 눈을 마주하고, 아니 마주친채로

괜히 한번 사랑한다 재미있었다 너 뿐이라고 속사포처럼 간지러운 귓속말만 먼지처럼 만지작 거린다. 


참 더럽게 치사하고 진부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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