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떨림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마무리는 두려움일 수 있는데, 그 공존에 서막은 그다지 거창한 하루가 아닌, 거저주어지는 하루이다.
우리가 무언가 두려워 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함에서 발현될 때가 많다.
아마 나도 그 이유에서인지 혼자서 씩씩한 척은 해도 마음 속에서 슬금슬금 치밀어 오르는 현실부정과 무서움을 마주 할 때면 역시나 인간의 끄트머리에서 머리를 조아리곤 한다.
뇌전증 약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는 눈에 뜨이게 말수가 줄어 들고, 가끔 보이는 환각으로 눈을 감고 있을 때가 있다. 햇살같이 맑고 밝은 아이라 일을 마치고 개털이 되서 집에 들어가면 '수고했어요 엄마'를 외치며 안아주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만 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도 같이 그 머리속에 들어가 앉아있고 싶을 때가 있다.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묵직한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모자를 잠식해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나 역시 부정하고 싶은 그 존재에 아들을 빼앗긴 것만 같아 함께 땅으로 꺼져 버린다. 한참 바닥을 더듬고 있자니 내 손으로 다시 약을 집어들고 아침 저녁으로 먹여야 하는 일상이 다시 찾아오고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억지로 밝은 척은 못해도, 상황을 그럴싸하게 꾸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인 것 같다. 가끔 하루가 너무 벅찰 때에는 이 놈의 질척거리는 삶은 언제쯤 끝나는지 수를 세어볼 때도 있다. 한번 가보지 않은 하늘 나라를 마음 속에 그려보기도 하고 만약 죽는다면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의미없지만, 그 때부터는 정말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정말 '나'일 수 있을 것 같아 두렵기는 해도 슬금슬금 기다려 보기도 한다. 내가 이 생을 마무리 할 때까지 아이는 무사할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나보다 먼저 아이가 치매가 오는 시나리오를 그려보기도 한다.
소설은 나 같은 사람이 쓰면 답이 없다. 이런 사람을 드라마 퀸이라 부르지.
정말 기승전결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인생 저 끄트머리에 갔다가 중간에 걸터앉아 혼자서 몇번이고 죽고 다시 되돌아 오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이가 구글링을 하다가 꽂힌 인물이 있다.
'나폴레옹'
뇌전증이 있었던 본인이 가장 기억하기 쉬운 인물이었겠지 싶다.
아마도 증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얻어가는 위안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 둘은 속닥거리며 그것이 올 것 같은 느낌이 오면 눈을 감고 나폴레옹의 세계에서 1분안에 돌아오기로 약속을 했다. 5분이 지나면 구급차가 출동해야 하는 위급상황이라 언제든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3분을 넘기지 않기로 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순간, 아무런 의식이 없어도 돌아오는 문만 기억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엄마를 부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얻어 걸린 암호는 '부르르르 나폴레옹'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걸 혼자 떠안고 머리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는 게 죄악같이 느껴지는 빠득하게 촘촘한 삶에서 멍해 지고 싶을 때. 나 역시도 멍해진 무거운 머리를 들이미는 아들처럼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같이 껴안고 멍해지기로 했다.
나무가 앞으로 뻗쳐나가는 환각에서 헤어나오기 싫고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 버려 깊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면, 나 조차도 탓하는 습관을 한켠에 접어두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가 보고 싶어 질 때면,
우리는 부르르르 나폴레옹을 외치며 다시금 반갑게 저쪽 닫힌 문 옆, 열린 문에서 만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아이도 나도 아직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