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감이 없는 이의 자유로움은 차라리 울부짖음에 가까울까 .
나라마다 탑재된 DNA가 있다면 최소 대한민국의 아들 딸들의 소속감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을텐데.
나도 그 중 하나였을까 싶다.
가만 보면 운전하다 우연히 주차한 곳이 정동같다가, 설핏 보이는 갈색 벽돌이 마로니에 공원 같기도 하다.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낯선 재즈바가 보일 것 같다가도 서 버린 그 자리는 쉼없이 영어가 흘러나오는 포케집이다.영락없이 이태원 같다.
나라와의 경계가 모호해 졌다고는 하나 한국은 여전히, 매캐한 매연 사이로 무신사 쌍둥이가 드나들며 집어든 런던 베이글이 고소한 곳이고, 여전히 십여년 넘게 영어를 공교육화 하는 바람에 미국 탑가수가 월드투어를 하면 영어로 떼창은 당연한 수 많은 선넘는 보통들이 존재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는 바보들이 드글거리는 곳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내가 '여기에 그렇게 오래 살았어'는 더 이상 그 곳에서의 내 정체성을 상기시켜주지 못하게 될만큼 한국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빨강과 파랑을 담은 팽이가 빨리 돌아가면 보라색 어딘가에서 통통거리는 것 처럼, 어디에도 보지 못한 색감은 나를 생각보다 더 옛날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번에 택시 하나 못 잡아서 다리를 동동 구르며 한손 번쩍 들어 '택시' 하는 나를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을까?
뉴욕에 있는 충남식당은 온갖 골동품을 다 끌어모아 레트로 감성으로 꼭꼭 주먹밥을 만들어 백반과 함께 그 지역 주민들의 입 속에 밥알 한알 한알을 넣어준다.
글로벌화와 지역화의 그 애매한 사이에서 사업가들은 어떻게나 그 좁은 길을 잘도 뚫어내는데, 나는 참 못나게도 그 앞에서 코를 콤콤거리며, 어딘가 내가 효창공원 어귀에서 먹었던 기사식당 백반의 향을 뉴욕에서 찾아내는데 여념이 없어 지갑을 열기에 바쁘다. 이쯤 되면 내 DNA는 상당히 갈피를 잡기 어려워 진다.
분명히 떠나 올 때에는 뒤도 안 돌아볼 것 같이 쌩까며 누가 잡을새라 건너온 이 곳이지만, 중국인이 많은 동네를 기웃거릴 때마다 들려오는 어설픈 영어와 , 시큼한 카레 냄새가 넘어오는 실리콘 밸리 어귀 아파트에서 묘하게 안도감을 느끼는 중이다. 아니 이럴거면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럴 일이냐, 하면 역시나 입이 뚜하고 나와 '니도 살아봐라'하며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남에게 하게 되겠지.
머리 용량이 작은 탓에, 한국말도 그렇다고 영어도 갑자기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이미 조국을 버린지 오래다. 하얀색이고 싶은데 그렇다고 잘 되지도 않아 검은색이기에는 또 너무 회색으로 와 버린 나는 더듬이를 어디에 둘지 몰라 하루를 연명하기 바쁘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그 곳에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아 정말 생각만 해도 쪽팔린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누군가의 묘비명이었는데, 영락없는 내 이야기라 내 마지막 가는 길에 던지는 출사표 정도되지 싶다.
결론이 상당히 모호해 지는 오늘은 마치 자신 같아, 나를 성수동 어귀에 세우는 게 맞는건지, 샌프란시스코 어귀의 작은 일본 케릭터 샆 앞에서 테슬라 우버를 잡아 타고 신촌 현대 백화점 앞에서 기웃 거리며 친구를 기다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정체도 모를 고향을 향해 그리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철새만도 못한 나는 한국의 추석마저 긴가민가 하며 아들에게 만두같은 송편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가 다니는 학원가에는 수많은 중국인 부모가 아이들 라이드를 해 주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렇게 수다를 떤다. 괜히 나도 중국인인척 근처로 지나가 본다. 저 여자 뭐지? 하는 시선이 싫지 않았다.
아 참. 조잔하고, 애잔하여라.
발 닿아 뿌리 내린 곳이 고향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이 곳이 낯설다. 십년을 지내며 고개 빳빳이 쳐들고, 다 알아듣는 척 하기에도 어느 날에는 버거워 나가서 하는 외식이 즐겁지 않아 괜히 집에서 찌개 하나를 끓여내며 가정적인 척도 해 본다. 도대체 뭘 해 줬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척하니 내야 하는 팁도 아깝고, 여전히 음식물 하나하나 분리수거해 버리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가족들에게 내가 하듯 종용도 해 본다. 좀만 걸으면 될 것 같아 차에서 내리면 총 맞아 죽고 싶냐는 날이 선 쇠소리에도 모른척을 못하겠다.
하나도 글로벌라이제이션 아니다.
속상한 날에는 매운 떡볶이로 입을 씻어야 하고, 상사를 욕할 때에는 소주와 함께 쓸어내려야 한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노래는 영어가 아니라 김동률이나 토이여야 하고, 블랙핑크까지는 봐줄 수 있다.
이제는 안에서 울먹거리는데 티를 안내려고 혀를 깨물며, 스블 느그 그를즐 으르뜨(시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어딜 가야 과연 나 다울 수 있는지를 여전히 버리지 못한 미련으로 땅을 내려다 본다. 이젠 어딜가도 나는 없을 것 같다. 소재가 떨어져 배낭을 메고 어딜 좀 가야 그나마 글 한 줄이 떼어지는 구라쟁이 작가처럼 나 역시도 어딜 좀 가야 할 것 같은데, 이젠 한국도 가지 못하고 밥벌이에 묶여 미국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를 못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민 오고 싶다는 미국은 가끔은 스트리퍼처럼 가슴을 보여주다가도 이내 정숙한 척 하는 천박함을 숨기고 자국민을 위한 쇼맨십 하나는 기깔나게 한다. 자국민이지만 자국민이 아닌 나는 아이 학교에서 애국가가 흘러 나올 때면 괜히 핸드폰을 보고, 가사 한 소절 따라부르지 않으며 평가에서 떨어뜨린 미국인 상사에 대한 소심한 복수를 한다.
사람이 점점 좀스러워 지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어디까지 작아져야 비로소 점이 될 수 있을까? 선이 되고 면을 이루지는 못해 점으로 소멸되어도 상관없다. 내가 여기에 살았다는 사실조차도 누군가에게 기억조차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 소중했고, 그 와중에 마신 차 한잔의 그리움 한 스푼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잡히지 않는 하늘에 뻗은 손이 내 것이 아닐수도, 그 하늘 역시 누구의 것도 아님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잘근잘근 되새김질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