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덧없이 느껴지던 시절에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로 그 지루한 일상에 모두가 갇혀버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나만 이렇게 있지 않구나라는 사실이었다. 몇 년을 혼자 버텨내야 하는 느리게 자라는 딸아이의 육아가 우울감을 한없이 쌓아가던 시점이었다.
전 국민의 격리기간이 더해져 모두가 집에 갇혀야 하는 상황에서 그간 지내온 나의 하루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건 슬프면서도 괜스레 반가운 소통이었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라는 돌밥돌밥 속에서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늘어나는 건 잔소리와 미간의 주름이었다. 아이들과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부글거리는 마음의 관심과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키우게 된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매일
사랑해~ 쑥쑥 자라라
라는 말을 해주게 되었다.
한 이파리씩 봉긋 솟아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함께 솟아났다. 사랑과 관심을 줄수록 더 푸르게 싱싱하게 커가며 지친 내 마음에 위로를 주는 건 역시 이 화초구나 싶었다.
왜 그리 중 노년의 어머니들이 꽃을 키우고 화초에 물을 주는지 공감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사랑해~ 쑥쑥 자라라라고 말하며 애정과 사랑을 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나를 보며 남편이 뭐 이런 사람이 있어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같은 표정으로 뭐! 뭘 보는데~ 왜!라고 대꾸하자
식구들한테는 그렇게 안 하면서! 화초에게는 애정을 한 없이 주고 있네~!
라고 남편이 말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가족에게 내가 주고 싶은 애정은 화초에게 전한 마음과 비슷한데 이상하게 울 집 식구들은 잔소리로 들었다.
건강한 음식 한 번 더 먹이고 싶은 엄마마음과 달리 못 먹을 음식 주는 엄마가 되어 없는 솜씨에도 해주는 음식마다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집에만 있는데도 왜 이리 빨래가 늘어나는지...
학교에서 해주지 못하는 공부는 집에서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메꿔줘야 할 거 같은데.. 문제는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자식과의 실랑이었다.
친자감별에 유전자 검사보다 더 정확하다는 친 자식 친엄마가 가르치지 못한다는 진리를 직접 겪으며 머리를 수 없이 쥐어뜯게 되었다.
설명하는 내가 문제 인지 못 알아듣는 아이의 귓등이 문제 인지 남편과 서로 협의를 보다 다투기까지 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소통이 이리 어려운 것인가를 느끼고 또 느끼던 시간. 그 시간 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자기의 지인은 세 쌍이나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나라고 버티기 쉬웠겠는가냐마는 가족 간의적당한 관계의 거리 두기를 위해 키웠던 화초가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비법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남편은 회사에 간다. 나는 오랜 경력단절의 시간을 깨고 오전시간에는 프리랜서로 오후에는 정해진시간 동안 일하는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일하는 엄마로서 시간을 보내자 시든 건 늘 싱싱했던 화초였다. 그토록 사랑했던 화초들은 관심을 못 받자 시들어버렸고 말라죽어버렸다. 미처 신경 쓸 새도 없이 퇴근 후 늘 소파에 잠시 누워 기력을 보충해야 했다. 가족의 저녁식사를 챙기고 밀린 살림을 마무리하면 자야 할 시간이 되버렸다는핑계를 대본다.
마르고 시든 화초를 정리한 후 나는 이제 무엇을 키워야 하나 고민했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내가 가진 재능과 열정에 사랑을 담아 키워본다.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 요즘 스스로에게 "사랑해 쑥쑥 자라라~"라고 말하며 움츠렸던 내 안의 작은 싹들이 파릇하게 피어나기를 응원한다. 그렇게 마흔에 비로소 내가 키워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맞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보고 글을 써 내려간다. 수업자료를 찾아보고 강의를 준비해 본다. 건강하게 먹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웃어본다. 그리고 상쾌한 바람을 쐬며 산책을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