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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다운타운에서는 길을 헤매지 마세요.

by 가리영

[15분마다 울린다는 증기시계]


캐나다를 가기 전 계획형 인간인 나는

여행지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가야 불안함이 줄어든다.


예상하지 못한 계획성 없는 여행은 싫다.

여행의 특별한 묘미가 없는 여행자.




에어캐나다 비행기에 대한 블로그포스팅과 브이로그를 수십 편을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11시간 동안 불안이 적었다. 이미 계획 속에서 가상 비행을 수십 번 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 가고 싶은 곳들을 미리 적어둬~라는 남편의 말에 신이 나서 밴쿠버 여행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개스타운 증기시계!
개스타운은 사진빨이다. 속지말자 사진빨

남편에게 개스타운 증기시계!

그거 보러 갈래!라고 말하자


그거? 그거 실제로 보면 이게 뭐야?라고

하게 생겼어~ 그거 보러 갈 이유는 없는데....

진짜 실망할 거다.

이게 뭐야!라는 말 안 할 거면 가고~


본인은 어학연수 시절 봤다고 저러나?

나는 꼭 볼 거야. 그러니까 그 이국적인 분위기의 증기가 나오는 시계를 보고야 말 거야라고 다짐했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시차적응이 끝난 우리는

바로 다음날 첫 여행의 목적지로 개스타운을 갔다.


여전히 날씨는 우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밴쿠버 다운타운에 도착


주차를 하며 멀리서부터 수증기가 나오는 작은 뭔가가 보였다....


- 설마.. 저거??..


그러니까.... 가로수와 길가의 가로등 사이에 있는 저 작은 시계? 뭔가 수증기가 나오는 저거??;;;


순간 남편에게 꼭 봐야 한다고 우겼던 시간이 미안해졌다. 밴쿠버에서 제일 별 볼일 없는 게 개스타운이라고 남편은 나에게 몇 번이나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을 걸.....


실제로 보니.... 진짜 저게 뭐야??

아니 이게 뭐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미리 스포를 날려서 죄송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여행에서 즐기는 사람이라면 밴쿠버에서 꼭 개스타운을 보러 가보라고 해주고 싶다.

사실 블로그마다 그 말이 적혀있긴 했다.

막상 가면 실망할 거라고 볼 게 없는 가보지 않아도 되는 코스라고....


문제는 별 볼일 없는 개스타운이 아니었다.


다운타운에서의 화장실이었다.


출발 전 물을 너무 많아 마신 탓에 [500ml 원샷] 도착 전부터 화장실이 급했다. 기념품 샵에 들어가 저기 화장실 좀이라고 말해봤지만 나도 몰라 글쎄 라는 반응의 대답이 나의 방광을 더 부풀게 했다.


여보... 나.. 쌀 거 같아..... 울먹이자


남편은 늘 하던 대로 어쩌지..,.라는 차분한 말투로

나의 방광을 외면했다.


둘째 딸이 엉덩이를 만지며 쉬가 마렵다는 표시를 했다.


그때서야 화장실을 찾는 남편


기차역에 들어가 봤지만 화장실이 없단다.

방광을 비틀어 짜면서 이상한 걸음으로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첫 관광지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지나가는 캐나다사람을 붙잡고 저기.. 제발 화장실... 그는 말없이 우리를 오라고 하더니 개스타운의 옆 골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지나가다 보니


*코와 귀 심지어 눈 위를 다 뚫어서 피어싱 한 여자들이 쓰레기 통 안에서 웃고 있다.


*가방에 이상한 물건들을 담고 무엇을 쳐다보는지 모를 힘없는 눈으로 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사람


*찌린내가 코를 팍 쑤셔대는 냄새가 나는 사람


*혼잣말을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걷는 사람


블로그 포스팅에서 사람들이 말한

홈리스 골목이었다.


개스타운을 보러 갔다 골목을 헤매지 말라는 당부의 말 /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글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계획성 있는 사람이라서 절대로 그런 골목에 갈 이유가 없어!라고 말했던 나는 지금 다리를 비비 꼬면서 울먹이면서 처음 보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다.


그가 데려다준 곳은 팀 홀튼 도넛가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내가 가고 싶은 화장실은 도넛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도넛을 사기 전에 방광 속 울고 있는 수분들이 뿜어 나오게 생겼다. 눈물로 수분들이 나오려고 하는 눈빛을 보내자 캐나다인들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먼저 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땡큐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들어간 나는 끝없이 나오는 수분을 배출하며


와!! 살았다!!라고 말했다.


딸이 발을 베베 꼬며 엄마 나도라는 눈빛은 한참 뒤에 보게 되었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우리는 우리를 인도한 캐나다인을 찾았지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개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길


스쳐 지나가는 홈리스들의 골목에서 너무 무서워 눈을 찔끔 감아야 했다..

앞으로 여행에서 남편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며

고분고분 마누라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첫날 캐나다 홈리스에 놀란 나는 여행 내내 남편에게 다정했고 까칠함 숨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속으로 되뇌었다.


관광을 나가기 전 물 마시지 말 것!

화장실은 미리 다녀올 것!

아니 아니

다시 말하지만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시지 말 것!


그러나 나는 또 물을 많이 마시고 찾지 못할 화장실을 헤매는 일을 만들고야 말았다.


그 이야기는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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