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까?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ebs다큐를 보고)

by 가리영

20대에는 영양제를 선물로 받게되면 먹지도 않았다. 왜 먹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꼈고 먹는다고 해도 몸에서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튕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먼지가 쌓인 채 쓰레기 통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눈가의 주름 그리고 거뭇해지기 시작하는 기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면 당신은 아직 젊은것이다. 40대 내 나이 주변의 또래 여성들은 주로 보톡스, 필러, 레이저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시작하는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다니며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우연히 70대 산악회 모임의 무리와 함께 배를 타고 섬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는 보톡스도 레이저도 들리지 않았다. 주된 이야기는 인공관절과 백내장 수술이 어느 병원이 좋은지 수술을 하고 나니 한결 편하다는 후기들의 이야기였다. 나이마다 나누는 신체의 이야기가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0이 된 친할머니는 "나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말아 다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나를 집에서 죽게 해 다오!"라는 간곡한 부탁에도 코로나 후유증으로 대소변을 잘 가리시지 못하시고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가셨다. 그토록 할머니가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요양병원의 일상을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어렵자 동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5명의 할머니들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계셨다. 때로는 손과 발이 끈으로 묶여있기도 했다.. 밥이 나오자 할머니들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빛으로 앉아 밥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다. 다 빠져버린 이로 작게 썰어져 나오지 않고 덩그러니 나온 알타리 무를 쳐다보고 계셨다. 힘 없이 수저를 뜨고 입가에 다 흘린 채로 겨우 식사를 하셨다. 인생을 94세까지 살아온 마지막의 모습은 덩그러니 그리고 외롭게 남아있는 하루였다. 그렇게 계시다 폐렴에 걸리셨고 할머니는 이 땅을 떠나셨다.


요양병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며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가는 길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노년이라는 때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순간은 힘이 없고 나약하며 호흡마저 힘겹다..



나에게도 찾아 올 시간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순간 쳐다본 시계가 4: 44 분일 때에도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어떻게 죽을까?


올해로 40 마흔이 되자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할 거라도 먼저 마흔을 지나가 본 지인들이 미리 가본 여행지의 후기처럼 자세히도 말해주었다. 관리하기 나름일까?라고 생각했지만 예민한 몸은 쉽게 피곤했고 유난히도 자주 감기에 걸려서 잘 회복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 사람이 연약함을 갖게 되면 마음 또한 약해져서 건강할 때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하게 된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사유


늙어감은 다시 아이가 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아이처럼 이가 빠지고 누워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며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다시 돌아가버린다고.. 누군가를 돌보고 챙기고 삶을 이끌어가던 쟁취적인 모습이 아닌 누군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적인 연약한 모습이 되어버린다.


나는 나의 부모님 그리고 시부모님의 나이 듦을 보며 노년을 미리 배워갈 것이다. 차츰 사그라지는 건강이 해마다 달라짐을 그분들을 보며 알아간다. 어린아이들을 키워놓고 이제 아 그런대로 편하다 싶으면 이제는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고 한다. 그렇게 떠나감의 시간을 보내면 이제는 그 시간을 보낸 우리의 차례가 돌아온다. 왜 젊음은 무한할 것처럼 자신 있게 버티다 허무하게 떠나버리는 것일까?


나이가 먹을수록 더 적게 그리고 가볍게 소유를 비우는 법을 배워갈 거라 생각했다. 욕심이라는 것이 죽음이 가까워지면 부질없음을 알고 줄어들거라 생각했다. 때로는 그 욕심이 타인을 내 생각대로 하고 싶은 주관의 휘두름일 수도 있다. 완강함 강퍅함 고 지식함 등이 그것이라고 한다면 늙어갈수록 힘이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더 강해진 건지 궁금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늙으면 더 하고 싶어 져 왠지 알아? 더 늙기 전에 더 해야 한이 없거든!이라는 말에 죽고 나면 의미가 없는 것에 대한 집요함이 왜 그리 생기는 건지 알고 싶었다. 이해한다는 마음이 아닌 어디까지 하려나?라는 의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늙음은 부질없고 의미가 없는 일에 대한 판단까지 흐려지게 하는 것일까?


나의 늙어가는 시간들은 부디 고귀했으면 한다. 비록 몸이 약해졌더라도 마음은 다가올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며 가벼워지기를 더 가지지 못해서 아쉬워하기보다는 더 많이 자주 나누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기를 그렇게 비워가기를 바란다. 쉽게 가벼워지지 못한 나의 강팍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별 의미 없고 부질없는 그것이 아직도 버려지지 못했다. 앞으로의 늙어가는 시간에서 내가 버리지 못한 부분을 가볍게 잘 풀어가는 지혜가 있기를 기도해 본다.



한 신부님이 성도들에게 묻는다.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 있으세요??

(한 90대 할아버지가 손을 드신다.)


#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없으세요?


- 으으응~~ 없어..


#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비결이 뭐세요?

좀 알려주세요~










으으응~~ 다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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