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길에서 주워듣는 이야기

by 가리영

무심한 표정으로 길을 걸으면서도 나는 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가로수의 한 나무처럼 하나의 전봇대처럼 있어야

그들의 꾸미지 않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선글라스를 끼고 엿보는 것처럼

귀로 엿들어보는 이야기는

눈의 시선처럼 흔들리지 않고

귀는 고정되어서 들키지 않는다.


시장 횡단보도 옆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3명의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찻길 건너편에 앉아 나물을 팔고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말한다.

“ 어이~ 저기.. 저! 저 사람 그 사람 아니당가?

아 있지눼 옛날에 주식해서 돈 많이 벌어서

비싼 벤츠 차 타고 다니면서 우리 지나가면

눈을 요리 내리깔아블 고

별 볼일 없는 것들 지나간다고 쳐다보던 그 여자!


아 돈이 겁나 많아블어가꼬 똥 닦아도

되게 많다고 소문이 나브럿는디....


아 그런데 좀 지난 게 쫄딱 망해브럿다드만

아 저기서 나물 까고 앉아브럿네잉! 맞지? 맞아?”


두 명의 아줌마는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 아 그러니까~ 저리 정신이 나가버린 것처럼 변해브럿다고?? 머리는 다 풀어헤치고 얼굴은 꺼메져가지고 그리 돈 많다고 뻐기더구먼 사람이 쪽박 차브럿구만 그러니까 사람은 잘 된다고 뻐기고 다니고 그러면 안된당게~~.인생은 모르는 거여. 알 수 없다니께 ”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시장 할머니들의 야채를 파는 자리 길목에 끼어들지 못하고

시장 아래 찻 길 옆 횡단보도에 앉아있었다.

눈빛은 힘이 없었고 머릿결은 윤기라는 게 없이

허름하기 그지없는 옷을 입고

키워서 가져온 거 같지 않고

어딘 가에서 뜯어 온 거 같은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었다.


잘 나가던 시절 다른 이들을 무시하던 눈빛은 어디 가고 허망하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행색이었다.


“ 아따 그래서 돈이랑게~ 그런당게~~

있다가도 없고 있으면 평생 잘 먹고 잘 살 거 같아도 믿을 수가 없어브러. 사람은 그래서 돈을 믿고 모가지에 힘주고 댕기믄 안돼. 짠하기도 한디 그 때 하도 뵈기싫게 행동해서 본인이 했던 거 도로 받는 거 같구만 !! 가세~ 버스 왔네 ”


그렇게 그녀들은 떠났다.

그리고 횡단보도 옆 힘 없이 앉아있는 아줌마에겐

그 누구도 내가 보는 시간에선 무언가를 사가는 사람도 사겠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어렵게 국가보조금을 받고 아이들을 겨우 키우고

최소한의 경비로 하루를 살았던 한 가정이

오랜 시간 노력을 들인 사업의 성공으로 부족함 없이 아니 넉넉한 삶이 되었다. 그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기 보다는 편리하다고 말했다.

얼마일까? 라고 가격을 덜 보게 되는 삶이 되었다고 했다. 그게 행복일 거 같은데 편리라고 말했다.


결혼을 하기 전 혼자서 벌기에 넉넉한 월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쇼핑을 하는 게 노동을 위로하는 즐거움이었고 넉넉함을 누리는 여유였다.


하루는 가격을 따지지 않고 옷을 사고 그 가게에 계산만 하고 옷이 담긴 쇼핑백을 가져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쇼핑백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저 내가 돈으로 잠깐 스쳐가는 듯이

쇼핑의 기분만을 내고 싶어 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고 그런 내 자신에게 놀라게 되었다.


필요한 물건을 사게 되었다는 만족감보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잠깐 물을 붓고

물이 흘러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중독 같은 기쁨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점이었다.


나의 채워지지 않는 소유라는 욕망에 돈을 벌어 부었고 그 곳의 돈을 가져다 소비의 욕구를 채워보려고 했지만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주 찰나 잠깐 스치듯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물질은 나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수 많은 모래사장의 모래를 가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고 해도 파도가 스쳐가버리면 그것은 와르르 무너진다.


거친 바람이 불면 부셔져버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돈이란 모래알갱이같은 것들인지 모른다.

그렇게 모아보고 가져보려고 하지만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로 흘려내려가버린다.


나는 나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공허함은 생각과 달리 깊은 고난에서 채워졌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괴로운 현실에서 울고 울다가 채워졌다. 결국 인생이란 내가 쌓아가고 만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에서 그 동안 바람이 오고가던 텅 빈 공간이 메꿔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자 내가 채우려고 했던 허전함이 넘치게 채워졌다.


여행을 가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입고

싶었던 옷을 사게 되어도 갖고 싶었던 금액의 돈이 내 통장에 있게 된다고 해도 사람에겐 잠깐의 기쁨만 있을 뿐 부족한 마음을 채울 수 없다.


기쁨을 주는 것들은 여전히 목마른 기분을 들게하고 한 없이 채우려고 하지만 만족이 없다.


모든 것이 다 털어져내려버린 것 같은 순간에서

나는 하나님이 나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모든 것이 부족해도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거 같은 절망이었지만 내 마음에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이 생겼다.


결국 행복이란 만족이란 낡아지고 없어질 것들에서 채워지지 않는다. 영원한 것 아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존재하는 십자가의 사랑이 채워주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길래 죄 많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싶은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채워갔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바라보시며 안아주시기를 원하는 만질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사랑이 가득 넘치는 마음이 들도록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상의 허무함과 채워지지 않는 헛된 것으로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안하고 염려하는 인생에게

부족함이 없는 삶에서 극심한 고난의 터널의 어둠으로 몰아세워져버린 인생에게

열심히 어딘가를 향해가지만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서 애쓰며 사는 지 모르는 인생에게


나는 내가 느낀 가득채워진 사랑을 전하고 싶다.

그 사랑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충만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17절 말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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