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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Mar 13. 2024

38/100 나의 멜랑꼴리아

다행이다

 나는 때때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누덕누덕 기운 너덜너덜하다고 했던가. 그래서 때로는 그 틈으로 파고드는 냉기를 막을 길이 없어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걷곤 했지. 그래서 지하철에 앉아 넋을 잃듯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려댔지. 또 어느 날은 몇 시간이고 걸었지. 또 어느 날은 며칠간 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집에 가는 길 내내 홀짝이며 걸어갔지. 남의 눈 따위는 의식하지도 않았었구나 싶다. 그런 겨를 따위도 없었나 보다. 그때 내게 버팀목이 되어 준 존재는 가족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을 방황했겠지. 가족과 친구 몇몇 외에는 더 사람과는 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었지. 그는 나와 참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뭐랄까, 마음이 참 여렸는데 나와 달리 강하기도 했다. 다정하기도 하고 내 곁을 묵묵히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내 고민 따위는 참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질 만큼 적절하게 거리를 두고 들어주기도 했다. 무조건적인 연민이나 듣기 좋은 말을 해줬다기보다는 아, 그렇구나 정도? 내게 딱 맞는 신기한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통하는 점이 있구나 싶었다. 마음에 드는 적당함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상대방도 놀랍게도 나의 부분들이 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나쁠 땐 적당히 나쁘고 작은 것에도 같이 기뻐할 수 있었다고. 함께 있으면 수도꼭지가 고쳐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수도꼭지가. 내가 글을 쓰고 있어,라고 말했지. '나는 누덕누덕 기워진 너덜너덜한 사람이야'라고 쓰게 되더라?라고 하니 적당한 위로의 말을 그가 건내더군. '중2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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