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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Mar 26. 2024

47/100 나의 멜랑꼴리아

고마운 자전거.

잠이 들기 전에 자전거를 새로 들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를 픽업하면서 한 번쯤 로망으로 꿈꿨던 '뒷자리에 아이 태우고 자전거 타기'가 있었다. 그런데 아이도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라는 이야기를 거듭하며 미뤘지. 안전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구체적인 자전거가 진하게 그려지고 색칠되었지. 마음속에 그려진 자전거가 이제 튀어나와 버릴 수밖에 없을 만큼 자전거에 대한 욕망이 터져 나갈 때 마침 아이의 친구를 봤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태우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보고 나니 그 욕망은 화산처럼 폭발했지. "친구가 엄마 뒤에 타고 가는 거 좋아 보여?"라고 했더니 아이는 말없이 내 품에 폭 안겨버렸다. 너무너무 부럽다는 뜻이겠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는 괜찮은 자전거 가게를 그 엄마에게 추천받고, 지체 없이 연락을 잡고 자전거 가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색과 사이즈를 대략적으로 고르고 말 했지. 바구니, 바구니가 필요하다고. 뒷좌석에 쿠션 안장 역시나 필요하다고. 왜냐하면 앞에는 책가방을 넣고 뒤에 앉을 아이 엉덩이는 아프면 안 되니까. 너무 낮아서도 안되고 너무 높아서도 안된다고. 너무 낮으면 뒷좌석 아이가 무릎을 힘겹게 굽혀야 하니까. 또 너무 높으면 넘어질 때 크게 다치니까. 그런 까다로워 보이는 요구만 한 단순한 구매자였다. 기어가 어떻고 브랜드가 어떻고 그런 건 잘 몰랐다. 나는 아이에게 새 자전거를 소개하고 짜잔 하며 나타났다. 애인에게 새 차를 뽐내며 드라이빙 데이트를 하러 가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 일까? 아이는 너무나 놀라더니 다소 겁이 나면서도 설레며 나를 꼭 잡았다. 씽씽, 속도를 제법 내야 쓰러지지 않아. 엄마 그래도 조금 무서워. 걱정 마! 하면서 엄청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데 고작 그거 달렸다고( 버스 몇 정거장 정도?) 엉덩이가 엄청 아프고 피로감이 쫙 몰려왔다. 그런데 이런 피로감은 너무 고마운 것 있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딱 그런 물질이 나오니까. 자전거는 낮에도 밤에도 나를 웃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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