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곱하기 아이<몹시 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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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앓다>
그날은 외출할 일이 없었고, 하루의 일과는 간단했다. 월요일 강의자료를 갈무리하고 문제풀이를 검토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방바닥을 치우고, 필요한 자료수집을 인터넷으로 하는 것 정도. 한마디로 아주 한가로운 날이었다. 아직 임신 초반이라서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날은 조심할 것도 없이 단조로운 스케줄의 날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무거운 중력에 붙잡히듯 오전부터 모든 일을 느릿느릿 겨우겨우 해 내고 있었다.
‘오늘은 된장찌개를 해야겠다. 속을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찌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통돌이 세탁기가 멈춰서,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굼과 탈수 버튼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집 앞 마트에서 찌개용 두부와 채소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고, 돌아오고 나서는 냉장고에 장 본 것을 넣을 새도 없이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방바닥에서 기절하듯 잠들었으리라. 눈을 떠 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나 있었고, 엄살이 아닌 진심으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줘요. 엄마, 오늘 바쁜 일이 없길 바라요. 제발. 신호는 하염없이 울렸고 응답은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카톡 메시지로 신랑에게 다잉 메시지를 남겼다. ‘죽을 사다 주세요.’ 그렇게 나는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떠 보니 부재중이 찍혀있었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엄마와의 통화 연결이 너무나 가뭄의 단비처럼 감사했다. ‘된장찌개, 된장찌개를 끓여주세요. 아파요.’ 이후 나는 또 기약 없이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이미 해는 져있었고 요리하는 친정엄마가 계셨다. 눈물이 왈칵 났다. 아프다고 엄마를 소환한 것이 너무 죄송하고, 또 마음이 놓였었겠지. 나는 이토록 나약한 사람이었을까. 그 와중에 된장찌개 내음이 왈칵 몰아쳐서 배가 몹시 고팠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찌개백반을 비웠고, 직장 내 돌발 사태로 퇴근이 늦어진 신랑이 죽을 들고 한참만에 나타났다.
사위의 식사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미소를 짓는 엄마가 감사했다. 나는 아직 손이 많이 가는 딸이었겠지. 좀 더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내가 훗날 아기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 엄마의 반, 아니 반의 반이라도 의지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진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먼 길을 한 걸음씩 가야 하는 것일까? 부디 지치지 않기를.
나는 그 이후도 거의 일주일을 앓아누웠던 것 같다. 입덧과 몸살이 폭풍우처럼 번갈아 가며 내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마치 홍수로 잠긴 마을이 한동안 물이 빠질 때까지 물에 출렁거린 것처럼 말이다. 입덧과 몸살은 대부분, 아직 태아라는 낯선 세포에 엄마의 면역체계가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DNA를 가진 세포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혼란하기 때문에 내 몸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새벽에는 오한 때문에 떨고 있는 나 때문에 신랑이 안절부절못하고 물수건을 계속 갈아주었다. 나는 춥다고 했지만 신랑이 만져보면 내 몸은 불덩이 같았다고 한다. 말라리아에 걸린 것 마냥 더위와 추위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에, 주말이라서, 임산부라서 약이나 병원을 미룬 내가 너무나 미련했던 것이다. 회복 후 들었던 팟캐스트에는, 임산부가 먹어도 되는 감기약을 처방받아서 병을 안 키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더라. 허탈했지만 그것은 조금 나중의 이야기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신랑이 말했다. ‘옛날이야기처럼 아이를 낳고 몸이 약해진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 신랑은 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나는 아가랑 둘이서 사이좋게 살면서 자기 사진에 꽃이며 초코바며 가끔씩 놓고 그리워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몹시 걱정되었어.’ ‘그렇게 되지 않게 내가 건강할게.’ 나는 신랑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니까 좀 더 곧바로 씻고 양치질도 꼬박꼬박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야 해?’하고 말하는 신랑의 표정에는 다시 아빠의 표정이 깃들어있었다. 이쯤에서 오해를 풀어야겠다. 나 그렇게 안 씻는 여자가 아니다. 그냥 상대방이 더 깔끔할 뿐이다. 아, 써놓고 놔도 뭔가 더 궁색한 변명 같다. 정말 오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