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라니 10

아이 곱하기 아이 <닝겐! 닝겐!>

by 로로Ror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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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겐! 닝겐!>

내 배꼽시계는 정확하기가 아주 스위스 시계급이다. 시간이 되면 공복감을 딱딱 알려주고 어떻게 해서든 식사를 하라고 보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큰 일을 치를 때나 작은 일을 해야 할 때나 공복의 상태를 유지하지 말라는 아주 성실한 배꼽시계가 나의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배가 고프면 내 목소리가 배까지 울려서 괴롭다. 멋진 음악 공연을 감상할 때, 배가 비어 있으면 그 틈으로 음악이 울려서 슬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를 표하는 것이렸다. 그래서인지 배꼽시계 근처에 둥지를 틀었을 아가의 반응도 매우 정직하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마치 돌고래가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듯이 점잖고 귀엽게 돌고 있음이 확 느껴진다. 스트레스를 받을라 치면 딱딱하게 움추러들며 뭉치는 것도 아주 확연히 알 수 있다.

어느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임신 중에는 섭취하지 말라는 커피를 몇 모금 마셨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하루에 한 잔은 괜찮다고 하는 의사들의 말도 있었지만, 커피가 너무나 당기고 일에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안에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마치, 로봇 안에 인간이 조종하기 위해 들어가서 각종 레버를 잡아당기고 단추를 누르듯이 ‘뭐 하냐! 익익! 커피 들어오니 당장 멈추지 못해!’라는 시위가 느껴지듯 배가 갑자기 뻐근하게 당기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잔을 내려놓고 이미 마셔버린 커피를 희석이라도 하듯이 생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배에 손을 얹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그러자 ‘담에 또 그러지 마, 이번엔 봐준다.’라고 하듯이 다소 오만하지만 관대하기도 한 어린 황제의 당김은 잠잠해졌다.

최근 인터넷에 ‘닝겐’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인간이라는 한자어 표기를 일본어로 발음하면 닝겐이 되는 것이다. 가령 고양이가 집사(자기를 돌보는 주인)에게 ‘닝겐, 나를 돌봐라, 닝겐, 참치캔을 따 줘라.’ 이런 식으로 인간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신조어처럼 한국어에선 쓰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화가 안 된 미지의 태아가 나를 향해 엄마! 엄마!라고 하기보단 어쩐지 닝겐! 닝겐! 하면서 의사표현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늦게 잘 때, 평소보다 많이 움직여서 몸이 피곤할 때, 예전에는 그 무리함에 지쳐서 내 머리가 쉬라고 명령하는 느낌이었다면 그 신경 물질이 내 뇌에 가기 전에 배에 우선순위로 가서 그 아이의 의지를 비로소 내 뇌로 전해주는 그런 착각과 확신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만 걸어라 닝겐! 저기 벤치에 앉아라 닝겐! 이제 누워라! 자라 닝겐!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엄청난 생떼를 부릴 것이야.’ 혹시라도 이런 불호령이 떨어지면 나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혹은 여의치 않을 경우 ‘아직 갈 길이 남아서 다음 벤치에선 꼭 멈춰 서겠습니다, 이것만 끝내고 한 시간 후에 꼭 자겠습니다. 우선 십 분 휴식으로 참아주세요.’라는 마음가짐으로 결제와 협상을 하게 된다. 내가 건물주고 아이가 세입자가 아니라 닝겐과 고양이 같이 도도한 아이의 관계가 우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임산부가 된 이후 매사에 조심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꾸려가야 할 일상생활을 수행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기가 나오고 나서는 더 하지 못할 것들을 미리미리 해 놓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아쉽고 의미가 깊어서 이런 협상이 불가피했다. 신랑은 이제 자주 나에 대한 호칭을 ‘닝겐’이라고 칭하면서 즐거워한다. ‘닝겐! 어서 밥을 먹어라! 닝겐! 씻어라! 닝겐! 자라!’하며 활짝 웃는다. 제발 날 여자로 대해줘……. 태아가 시어머니라면 신랑은 말리는 시누이 같달까. 그래서 오늘도 닝겐은 열심히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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