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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3. 2024

3/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내가 아홉 살 무렵, 한국에서 돌아와 우기고 우겨 2학년으로 들어갈 무렵이 멜랑꼴리아가 내 궤도에 진입했다. 


가족들과 해외에 잠깐 살다가 돌아왔는데, 당시의 나는 한국어를 잊어버리지는 않았으나, 받아쓰기 시험에 빵점을 맞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동네는 유달리 선행학습에 열성이던 분위기와는 나는 영 달랐던 것이다. 2학년이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에 열성적일 줄은 몰랐었고, 한글이라면 자신 있었으나 착각이었다. 그저 '리터니'였고  한국 학교 적응 과정에서 버퍼링이 심했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런 내 뇌파를 감지했는지, 우주 저 끝에서도 나의 슬픔을 눈치챈 멜랑꼴리아가 옳다구나 하고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또래 친구들과 의사소통에 자신이 점점 없어져서 의욕적이고 적극적이던 성격이 소극적으로 확 바뀌어버렸다. 해외에서 1학년을 맞이하며 '나는 남들보다 배움이 빠른 아이!'라는 자부심은 그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차라리, '나는 원래 말이 없고 학교 수업을 싫어하는 아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설정이 받아들이기 편했다. 눈앞에 좍좍 틀렸다고 체크된 시험지, 아이들 앞에서 구구단을 외워보라며 내가  발음이 꼬여서  멈출 때마다 망신 주던 촌지쟁이 담임선생님, 줄을 서서 검사 맡을 때마다 내 뒤에 와서 흰자를 치켜뜨고 '일본 놈'이라고 속삭이던 심술궂은 학우가 내 자아존중감을 무너뜨리는데도 한몫했다. ( 훗날 이 아이는 동네 외부 행사에서 마주쳤는데 나는 시원하게 한마디 했었지. 그 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들아, 쟤 못된 애야. 나를 괴롭혔어.') 멜랑꼴리아의 파장은 이렇게도 강력하게 어린 시절 나에게 벼락을 내렸다. 내 몸과 마음은 새까맣게 타버렸지. 훗날 성인이 되어 잠깐 머물던 일터에서 마주친 초등학교 동창이 나를 정확히 알아보고 내 이름 석자를 기억해서 놀란 일이 생겼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더라.

"너처럼 한마디도 안 하는 아이는 처음 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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