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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9. 2024

9/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첫 번째 멜랑꼴리아의 선물은 ‘침묵’이었다. 내 입에 한 숟갈 가득 떠 먹여준 침묵은 꿀처럼 끈적였다면 두 번째는 ‘가시’였다. 나는 내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낯선 이에 대해서는 늘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고 있어서인지, 나를 어려워하는 상대방들이 많았고, 그 부분이 나는 꽤 맘에 들었다. 그럴 때는 내가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서 벽을 허물고 친밀하게 대하면 그 반전 효과로 내 편은 확실히 생겼다. 내가 원했다면. 다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길고양이처럼 날을 세웠다. (그들이 알아채든 말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녔다) 이빨에는 광견병의 균이라도 묻힌 듯이 기본적으로 삐딱한 미소를 달고 다녔다. 웃기고 앉아 있는 노릇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너무나 진지한 늦은 사춘기 소녀 같은 이십 대를 보냈다. 하지만 사실은 외부에 대한 경계가 심한 만큼 기운이 금방 소진되어서 몸과 마음을 털썩 내려놓고 싶은 만큼이었다. 문자 그대로 인적이 드문 계단에 주저앉아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렇게 마음속 먹구름을 조금이라도 빼두면 또 개운한 얼굴로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못 채도록 열심히 살았지만, 친구들이 훗날 말하길, 새삼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좀 이상하긴 했었다고.


사춘기 무렵 해외에서의 생활은 처음에 고독 그 자체였다. 타국의 학교에서 원래의 나는 영어와 미술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지만 그 정도 영어로는 학과 공부를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공부량이 부족했고,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다음 학년 진급을 위해 재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허다했다. 실패자, 패배자 등등 온갖 과도한 비난의 언어를 스스로에게 꽂아가며 사서 맘고생을 했다. 그런 자책과 힐난이 훗날 가시의 씨앗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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