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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09. 2024

10/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나의 우울감)

 인종차별, 사실 별거 없을 수도 있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크지만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더라도 말이야. 나의 학교에서는 전혀 다르게 생긴 전혀 다른 인종의 학우들 틈에서 누구와 맘을 터놓고 함께 있어야 하는지 어정쩡해서 항상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와도 재깍재깍 대답도 못했고, 알아듣지도 못했다. 또한 소 닭 보듯 한 시선이 너무 아무 감정이 없어서 시렸다. 내가 아시안이라서 놀림을 받는다기에는 각양각색의 동양인이 있었다. 같은 문화권이 아녔을지라도. 그냥 너무 서로 다른 느낌이라 쓱 지나쳐가는 무심함이 ‘인종차별’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냥 철저히 외롭다는 생각과 고국이 사무치게 그립고 매우 '추웠다.' 하지만.. 나 역시 나의 낯선 표정에서 학우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파키스탄 전통복을 입은 아이를 나도 모르게 한참 쳐다보고(그조차도 드문 일이었지만) 히잡을 쓴 여학생이 실제로 보여서 신기했으며 인도의 특정 계파의 터번을 쓴 남학생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 걸엄두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한동안 유별나게 낯을 가렸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생기길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말이다. 그들 역시 나에 대한 평가는 낯설고 자신들과 다르다였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있었던 동양인 중에서도 유달리 눈꼬리가 올라간 나를 처음부터 친근하게 여겼을 리가 없다

나 역시 거울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되지도 않는 평가를 했다

 그 부분이 묘하게 열등감으로 변했다. 딱히 잘나지도 않았지만 그리 못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 내 사진 보면 평범했다) 어쩐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ㅔ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다른 복식, 다른 말투, 다른 외모의 학우들이 익숙해졌고, 친근해졌고 반가웠다. 그렇게 그 풍토에 적응하게 되었을 무렵, 아버지 직장 문제로 나는 또 몇 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전혀 다른 나라에서 남은 학기를 겨우 채우고 졸업했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멀리서 보면 내 학창 시절은 마치 다채롭고 다양하고 독특하고 이국적인 천들로 만든 퀼트 이불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누덕누덕 기워지고 삐뚤빼뚤하고 자꾸 실밥이 터진다. 그 기억을 덮고 뒤척이다 보면 시침핀이나 바늘이 채 빠지지 않았다가 내 살을 찌르더이다. 내 몸과 마음을, 내 꿈속과 기억 속에서. 그래서 해당 나라에 대한 요리나 음악 혹은 이미지라도 접할 때면 기분이 묘해진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비 올 때마다 그 부위가 쿡쿡 쑤신다는 말, 겪어보지 않아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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