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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11. 2024

11/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나의 우울감)

 두 번째 주기 안에서의 삶

 사실 '취향'은 늘 그런 식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구성원도, 드라마에서 응원하게 되는 인물들도 항상 일종의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밝고 구김살 없는 인물들보다, 절대 처음에 돋보이지 않고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사연'이 있어야 관심이 갔다. 심지어 김원희, 정선경이 출연한 드라마 '장희빈'을 봤을 때도 인자한 인현왕후는 순 내숭 덩어리로 보이고 왕비 자리를 뺏은 장희빈은 솔직 당당하고 감정에 충실해 보여서 멋져 보였다. 그래서 아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 주인공이라서 너무 좋았다. 여주인공에게 아예 레드카펫이 깔려서 직진만 하면 되는 주인공 남자도 한 묶음으로 싫었다. 되려 표현이 서툴지만, 진심인 서브 남자역에게 더 마음이 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당시의 나는 인물들의 사연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냥 주인공들이 다 가져가는 것에 대한 묘한 심술이 발동한 것은 아녔을까? 부러워서. (그들이 당당하게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 따윈 봐도 못 본 척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소위 말하는 '태생적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질문, 나는 어떤 태생적 한계에 묶여 있었냐 하면 그저 평범한 축에 속했으리라. 은수저나 금수저 출신은 아녔지만, 밥은 굶지 않았고 학교는 다녔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기회도 가졌고 여러 문화도 체험했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악기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뭐랄까, 사랑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되, 소공녀 같은 느낌의 자아감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로망을 반영해 줄 만한 어떠한 반짝이는 장치들이 없어서랄까, 그리고 내 안에 열등감이나 무력감은 너무 큰 목소리를 냈다. 자존감이 부족했고, 마음에 쿠션이 적은 편이었다. 적어놓고 보니 나약하기에 짝이 없는 나는 준비 안 된 성인기를 맞이한 것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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