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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12. 2024

12/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그렇다. 나약하고 아직 덜 채워진 단절된 유년기와 학창 시절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의 대학생활은 철저히 학생다웠다. 이따금 땡땡이도 쳐 보고, 벼락치기 밤샘 시험공부도 했다. 또한 듣고 싶은 강의들은 욕심내서 꾹꾹 담았지만, 언제나 학기 말에는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전략적인 학습 전략을 짜기에는 낭만이 너무나 고팠다. 그래서 잔디밭에 가서 책을 읽는 그런 청승은 마음껏 부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이해가 안 가는 행동들을, 아니 고생들을 사서 하곤 했는데, 멜랑꼴리아의 파장에 의한 '정형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목적 없이 힘들어서 하는 행동처럼,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의미 없는 낭만짓을 계속했던 것 같다. 가령, 한 시간 반이라는 긴 통학 거리를 뻔히 알면서도, 출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험기간마저도 열심히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짓을 말한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공부가 더 잘되었냐? 아니, 그냥 캠퍼스에 가서 열심히 살았다, 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라는 그런 비효율적인 행동 말이다. 그러다가 덜컥 휴학을 했는데, 그래놓고는 도서관 근로 장학생을 신청해서, 그렇게 많이 벌지도 않으면서 휴학생 신분으로 도서관에 가서 일만 하다 왔다. 책이나 많이 읽었느냐 하면, 그런 편이었으나, 뭐랄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행동으로 하루를 채우고 왔다. 그러고 다시 시간이 되어 복학을 했을 때는, 나는 지하철에서 책을 펼치고 아무것도 읽지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펼쳐진 책 위에 떨어진 눈물이 어떤 글귀를 적시는지 보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서 그날 하루를 점치곤 했다. 그랬다. 그냥 울 준비가 늘 되어있어서 웃어도 울었고, 울 수 있으면 울었다. 왜 울었냐고 물어보면, 그날 하루를 늦게 보내서 집에 가는 길이 고되어서라고 대답했을까? 그럼 왜 목적 없이 외출하냐고 묻는다면, 그걸 몰라서 속상하다고 했겠지. 어린 왕자가 술주정뱅이 행성에서 나눈 모순적인 문답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사실 일종의 멜랑꼴리아 혜성 진입의 후유증을 겪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 아직도 그때의 나는 나조차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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