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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13. 2024

13/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 오는 나의  우울감)



 나의 계속되는 낭만짓거리와 정형행동은 불안정한 호르몬과 긁힌 무의식의 결과물이었으리라. 생각해 보면 나는 사춘기 시절부터 호르몬 불균형이 다소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지극히 모두가 그런 시기라고 하지만. 유달리 감정 기복이 심한 시기에 자잘한 악재가 겹쳤으리라. 덧붙여 여성으로서 겪는 달거리로 인한 주기적인 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정신줄 위에서 곡예를 했다.

 청년기로 넘어서도 아직 피해의식, 타인에 대한 불신감 등등이 어째 미성숙하게 발현되어서  내적으로 심한 상처를 스스로 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행복한 것처럼 보였으면 하는 멍청한 욕심도 있어서 티 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곪았을 것이다.

서비스로 여전히 반복되는 교복조차 짝 맞추지 못하여 등교를 못 한 악몽이라도 꾼 날이면 식은땀 범벅으로 깨곤 했다.

 무섭게도 지금 글을 쓰는 순간조차 당시를 묘사하려니까 어쩐지 내용이 빙빙 돌고 있다. 문장 내용이 정형행동처럼 중복의 연속이다. 그때의 나열을 반복적으로 어휘만 바뀔 뿐 아닌가. 숨이 막힌다.

 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서 당시의 나를 관찰해 보자.

'호강에 초를 쳤다.'

라는 아버지의 평가가 내려지리라. 어린 시절부터 고학과 자수성가의 아이콘이었던 아버지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나약함과 의지박약덩어리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해외에서 학업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은 물론이고 모든 삶에 도움 되는 전략적인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보고 매우 답답했으리라. 나는 굳어질까 봐 틀도 오븐도 두려워 도망 다니는 밀가루반죽 같은 상태였다. 내 안의 일부 하나가 계속 현실로부터 도망쳤다. 마치 '나 잡아봐라 메롱'하며 내빼는 진저브래드맨처럼. 걔는 구워지기라도 했지. 내 안의 밀가루 반죽 그 녀석은 먹힐까 봐 아직도 날것 그대로 돌아다닌다. 그러다 상하면 어쩌려고. 아니 이미 오색찬란한 곰팡이 배양덩어리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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