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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15. 2024

15/100 나의 멜랑꼴리아

(10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감)


'호강에 초를 치고 앉아있네.' 이 글을 우리 아빠가 읽는다면 이런 말씀하시겠지. 지금의 나도 그 의견에 완전히 일치하는 바다. 회초리 맴매감이다. 배 부르고 등 따시니까 저러지. 당장 먹고 살 문제를 만나봐라, 그럴 생각할 새도 없지. 맞아요 아버지, 그 말씀 맞아요. 다만, 나는 그런 상황에 대비할 수가 없을만치 나약했습니다. 그저 생존에 내몰리지 않아서 그나마 숨통이라도 트였을지도 몰라요.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청승을 떨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마도 그 청승을 마저 안 떨었으면 진작에 미치고 팔짝팔짝 뛰어다녔을지도 몰라요. 나는 꽃이 좋습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이면 나가고 싶어요. 머리에 꽃을 달고 빗속을 뛰고 싶지만,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습니다. 아마도 어떠한 최소한의 장치가 나를 이성의 영역에 붙들어둬 줬던 거겠죠. 그러나 그 끈만 잡고 헬륨풍선처럼 둥둥 떠서 실바람에도 흔들거렸습니다. 내심 팡하고 터지길 기대했을지도 몰라요. 그래야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을 수 있겠지요.


되돌아보면, 내 마음은 '깊고 좁고 갈라진 틈이 많은 계곡'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한번 들어오면 여운이 길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이상하리만치 쓸데없이 지나치게 기억력이 좋았다. 남들이 스치듯 한 말, 말투, 뉘앙스, 표정등이 영상처럼 담아져서 짧은 쇼츠처럼 재생되었다. 예전의 기억도 마찬가지. 백남준작가의 미디어아트가 연상된다. 내 무의식 안에 여러 대의 액정화면이 각자 번쩍번쩍 재생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은 머릿속에 화면이 있다면 단 한 개라서 다행이다. 당시에는 수백 개였다. 그만! 정전이 절실했다. 그럴 때면 열심히 한 가지 화면, 즉 영화에 집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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