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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23. 2024

22/100 나의 멜랑꼴리아

어깨 위에 앉은 악마

 몇 주를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서 귀가를 하다 보니, 그것도 못 해 먹겠더라. 무엇보다 발이 아팠다. 그래서 다시 지하철을 타기 시작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꾹 누르고 숨을 참듯 대중교통을 탔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리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건너편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러면 지상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집으로 가는 그런 순서였다. 그러다 보면 신호등이 내 앞에서 딱 초록이 되거나 빨간색이 되곤 했지. 대부분 간발의 차로 빨간색이 되어서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럼 내 앞을 지나가는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힘들어. 그냥 사는 것이 힘들다.'

'해가 무섭다. 밝은 햇살은 하루의 시작이고 하루의 시작은 고통이기 때문에, 아침 햇살이 너무 무섭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찬 나였다. 그래서 힘들어를 속으로 외치고 있던 바로 그때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힘든데 뭐 하러 버텨? 그냥 지금 차도로 뛰어들면 되잖아? 어때'

사실 생각이 스치기보다는 그런 목소리가 나지막이 머릿속을 울리는듯했다. 마치 만화적 표현처럼, 어깨에 작은 악마가 앉아서 내게 귓속말하듯이 말이다. 딱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외침이 아니라 떨어져 나간 어떤 조각처럼, 아니면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처럼 내게 죽음을 제안하는 다른 대승이 느껴졌다.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갈 때까지 간 건가?  귀신에 씐 걸까? 아니면 자아분열인 걸까?' 이상했다. 여태까지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안에서 나왔다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내 쌀독을 노리는 쥐와 벌레를 막지 못한 결과니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뿅 하고 솟았다. 두엄더미에서 핀 장미처럼. 산불 뒤에 솟아난 싱싱한 고사리처럼. 나는 어깨를 털고 외쳤다. 뭔진 뭐르지만 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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