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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Feb 25. 2024

23/100 나의 멜랑꼴리아

태도의 변화

 이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변했다. 내 어깨에 앉은 속삭이는 '악마'같은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는 한동안 내내 소름이 돋았다. 그 조차도 내면에 어떤 조각이었겠지만 본래의 나와 명확히 구분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나'와 '죽어라'를 외치는 미지의 목소리의 차이점은 이러했다. 그에게서 비롯된 의지가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였다. 해결책이라고 꺼낸 카드가 다짜고짜 죽음이라면, 해결된 뒤에 나는 그것을 볼 기회가 없지 않은가. 어쩐지 울적하고 묵직한 아픔이 심장 쪽에서 느껴졌다. 나는 구글 창에 여러 검색어를 입력해서 이미지를 봤다. 내가 느낀 감정을 단어로 투영해서, 그리고 죽음의 유의어들도 입력했다. 어떤 단어를 입력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보다 한걸음 떨어져서 내 단어에서 뜬 이미지를 지켜보고자 영어로 입력했다. 구글은 생각보다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때 느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두려운 장면들은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무심하고도 허무했다. 허무함 끝에는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가겠겠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주의 먼지뿐임을 새삼 깨닫자, 어쩐지 마음이 너무너무 편해졌다. 나의 하찮음이 귀하게 느껴졌다. 부정적인 감정이 싹 사라지고 출발선에 선 기분이었다. 짐을 다 내려놓은 기분으로 다가올 하루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그저 지구의 자전일 뿐이고 내가 그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고통받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탓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침해가 잔인하다고 느껴서 눈도 감지 못하고 두렵게 바라보며 미동도 않던 내가 부스스 일어나 씻고 식사를 즐겼다. 그때의 해방감은 정말이지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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