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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Mar 09. 2024

34/100 나의 멜랑꼴리아

멜랑꼴리아의 세 번째 방문

 왔구나, 왔어. 우주 끝에서 온갖 에너지의 파장을 뿜으며 기운차게 나의 혜성이 찾아왔지. 현재 내 주변을 돌고 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끊임없이 말하는 아홉수의 혼란기겠지. 혹은 디지털 달력에서 나이 앞자리 수가 딸깍하고 바뀌는 순간의 떨림처럼 사소하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어떤 분기점에서 멜랑꼴리아는 웅웅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요. 어릴 때의 내가 아니올시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멜랑꼴리아를 맞이한다. 눈물이 차오르면 흘려보내면 되고, 기운이 쳐지면 비타민을 먹고 움직이면 된다. 결코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거나  맥주를 주량 이상으로 마시지 않겠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내 마음가짐을 이리저리 틀어보는 것뿐이니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만일 이런 우울감에서 탈출할 수 있는, 혹은 탈출가능할 것 같은 다섯 가지 수단이 있다고 치면 세 번째 방법 시도에서 멈추리라. "모든 것을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어요." 하며 무력감에 못 이겨 패배를 선언하게 될까 봐 두렵다. "아직 몇 가지 솔루션은 남았지만, 게으름 좀 피우겠습니다." 하며 안빈낙도하는 허세 좀 부리고 싶다. 머리 위에 뜬 멜랑꼴리아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그 정도 패기는 부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기분 좋더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사 자격증 소지자처럼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풍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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