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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Apr 20. 2022

기억과 글

기억을 글로 남기다

"엄마 나 발이 늙은 것 같아."

"어? 뭐라고?"

"나 발이 늙은 거 같아."

"아 혹시 발이 커진거 같아? 발이 자란 거 같아?"

"아니, 발이 늙은 거 같다고."


'발이 늙은 것 같아.'


다섯 살 딸아이가 유치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던진 말이다. '늙었다라?' 이 아이는 늙었다는 말을 어떤 의미로 알고 있는 걸까 궁금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도시락통을 꺼내어 정리하고 있는데 옷을 갈아입은 아이가 바짝 다가와 붙으며 다시 말을 했다


"엄마 바바, 내 발이 늙었어."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간 시선은 엄지발가락에서 멈췄다. 그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어쩜, 아이의 표현이 너무 절묘했던 것이다. 아이의 '늙었다'는 주름이었다. 세상에나! 고 작은 발의 작은 주름을 보고 늙었다라니!


글을 적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글로 남긴다.




기억을 기록해두는 것, 그것은 어쩌면 기억을 상하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두는 일이 아닐까? 언제든 꺼내어 그때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써두지 않는다면 '발이 늙었어.'는 '발에 주름이 생겼어.'로 바뀌거나, 너무 어렴풋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글을 적는지를 물어본다면 수많은 이유 중에 이것도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기억이 기록되어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을 글로 적는다.

웃음이 필요한 언젠가, 꺼내어 다시금 웃을 수 있게.

흐릿해진 그때를 다시 선명하게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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