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산책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단순하다.
그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나서기만 하면 된다.
그 단순한 일이 지금껏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는 나를 묵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단순해지기로 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모자를 눌러썼다.
찰칵! 인증사진을 찍어본다.
작년 겨울이 시작되며 나의 새벽 달리기는 멈추었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다시 뛰리라 했었다.
봄이 왔지만 나는 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때의 나를 바람 맞혔다.
그리고 언제든 가도 만날 수 있을 나라고 생각했기에 약속은 계속 미루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때의 나와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더 멀어질수록 그 간격을 줄이기는 힘들어진다.
'내일 새벽은 달려야겠어.'
어제의 나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너무 좋다.
발뒤꿈치부터 닿아 엄지발가락으로 힘이 옮겨가는 그 느낌.
새벽의 상쾌한 공기.
아직 뜨지 않은 해의 해기척만 느껴지는 딱 적당한 밝음.
시작은 늘 단순하다.
나는 내일도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을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달리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