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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Nov 18. 2024

6. 인연

짚신도 짝이 있다.

‘그러니까 이번 토요일에 쉬고, 다음 주는 금, 토를 쉬겠다고?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럼 어떡해요. 아이 운동회라잖아요. 다음 주 금요일은 아내가 10년 만에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쉴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안된다고 할 순 없고요. 사정 좀 봐주세요.’

‘어휴. 어떨 땐 가족이 족쇄 같다니깐. 할 수 없지 모. 현장에 문제없도록 윤 차장이 단속 잘하고.’

‘네엡! 제가 없는 것도 모르도록 잘 처리해 놓고 가겠습니다.’

‘알겠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네, 소장님. 제가 순댓국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소장님과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격주로 일하는 평소에도 일이 빠듯해서 주말에 밀린 일들을 처리했는데, 이주나 주말을 비어야 했다. 서류 작업을 미리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가 고마워하는 모습도 눈에 훤했다. 고된 하루였지만 몸에 절로 힘이 났다. 부지런히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 어디예요?’

앞니가 빠져 한층 더 귀여워진 지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아빠 회사야. 지후는 어디야?’

‘집이에요. 엄마랑 퍼즐하고 있었어요. 아빠 회사에서 모해요?’

‘일하고 있지. 지후 오늘 유치원 재밌었어?’

‘네. 가끔 주원이가 괴롭히긴 했는데, 괜찮았어요.’

‘주원이가 또 괴롭혔어?’

‘네. 걘 계속 그래요.’

‘주원이가 지후 좋아하나 보다.’

‘에? 아닌데요.’

‘원래 남자애들은 좋아하는 여자애 괴롭히고 그래.’

‘주원이는 모든 애들을 괴롭혀요.’

‘아, 그래...? 그래서 지후는 어떻게 했어?’

‘선생님한테 주원이가 괴롭혀요. 했어요.’

‘그랬구나. 잘했네. 서후는 모해?’

‘아빠!’

‘오~ 서후! 모 하고 있었어?’

‘엄마랑 책 보고 있었어요.’

‘재밌어?’

‘네!’

‘애들이랑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같이 보고 있었어요. 퇴근 안 해요?’

‘어. 일이 좀 남아서. 조금 있다 해야지.’

‘에휴. 일이 많구나... 저녁은?’

‘응. 아까 소장님이랑 먹고 왔어. 당신은?’

‘우리도 먹었어요. 오빠 이번주 토요일에 쉴 수 있는 거죠?’

‘그럼. 쉴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고마워요. 얼른 일 끝내고 들어가요. 무리하지 말고.’

‘알겠어. 들어가서 전화할게.’

‘응.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잘 것 같은데... 혹시 전화 못 받으면 잔다고 생각해요.’

‘그래. 알겠어. 쉬어.’

‘그래요.’     

작은 누나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결혼 생각이 없다는 그녀를 만나며 나도 딱히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생각이 비슷해서였을까? 오빠 동생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되었다. 사는 곳이 가까워 자주 우리 집에 오던 그녀는 어느 날 아예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랑 같이 있다간 돌아버릴 것 같아.’

그 한마디로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당시 나는 같이 일하던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동생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형이 여자 만나는 건 처음 봤어요.’ 라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나는 큰방에서 그녀와 함께 지냈고, 동생은 작은 방에서 남는 방 하나는 그녀의 짐을 놓는 곳이 되었다. 그녀는 술을 좋아했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술과 함께 했다. 나는 열심히 술을 사다 날랐고, 저녁마다 배달음식과 함께 술파티가 벌어졌다. 동생과 셋이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와의 동거가 익숙해질 무렵 동생이 다른 현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숙소를 옮겨야 했다. 그녀는 아쉬워했지만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 어딘지 모르게 안도하는 모습도 느껴졌다.     

 동생이 떠난 뒤부터 퇴근하고 오면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엔 생식, 건강음료 등 다양한 음료를 먹게 되었다.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 데이트를 다녀왔다. 가끔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오래된 연인처럼 각자의 생활을 즐기며 함께했다. 결혼은 안 했지만 왠지 이런 게 결혼 생활이 아닐까 싶었다. 평범한 생활은 계속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창백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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