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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Nov 11. 2024

5. 병원

꿈이길 바랐건만...

 말없이 오빠 옆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없이도 통하는 사이. 결혼 11년 차 베테랑 부부의 모습이었다. 바로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안구파열로 오셨네요. 좀 볼까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간호사가 앞에 있는 세극등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마를 앞으로 꼭 대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오른쪽, 왼쪽 번갈아 오빠의 눈을 살폈다. 

‘왼쪽 눈은 이상 없고요. 오른쪽 눈은 각막 가운데를 뚫고 들어갔어요. 망막까지 들어간 상태라 일단 렌즈제거하고 망막 치료를 해야 됩니다. 혹시 어떤 게 들어갔는지 아세요?’

‘콘크리트 가루였을 것 같은데... 포클레인 장비가 새로 들어와서 거기 붙어있는 콘크리트 가루를 떼어내라고 작업자한테 지시했거든요. 망치로 세게 친 게 들어간 거니깐 콘크리트 가루일 것 같아요.’

‘혹시 철은 아닌가요?’

‘철은 아닐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망치로 포클레인 삽을 친 거니깐 쇠끼리 부딪히면서 들어갔을 수도 있겠네요. 그게 중요한가요?’

‘아니요. 중요하진 않습니다. 철근이면 자석으로 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렸어요. 상관없습니다.’

‘아. 네.’

‘오늘 수술하는 건가요?’

‘네. 오늘 수술하셔야 돼요. 일정이 꽉 잡혀 있긴 한데, 늦게라도 하셔야 됩니다. 수술 시간이 늦어지면 입원하셔야 될 수도 있고요.’

‘네. 알겠습니다.’

‘수술하면 시력은 돌아오는 거죠?’

‘지금 시력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오늘 수술의 목표는 파편, 즉 이물질 제거와 세균감염을 막는 겁니다. 지금 안구를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에요.’

‘네. 그러면...’

‘각막이 센터를 뚫고 지나갔어요. 예전처럼 보이진 않을 겁니다.’

‘...’     

‘나머지는 나가서 설명드리도록 할게요.’

의사 선생님의 눈짓에 간호사가 바로 밖으로 안내를 했다. 망연자실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축 늘어진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대기실로 나가 수술을 위한 안내를 받았다. 

‘응급수술로 잡혀서 오늘 수술은 하실 건데요, 비어있는 수술방이랑 마취선생님 일정을 확인해야 돼서 시간이 늦어질 거예요. 오늘 입원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내가 대답했다.

‘원무과 가서 결제하시면 되고요, 수술 전에 추가로 검사하실 게 있거든요. 처음에 오셨던 응급실로 가셔서 필요한 검사 하시면 입원실 안내해 드릴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간호사 설명대로 원무과에 가서 결제 및 접수를 완료하고 나왔다. 오빠는 준호 씨에게 혹시 망치나 장비에서 철근이 부러진 게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원래 철끼리 세게 부딪히면 철이 터지잖아. 김반장 님한테 전화해서 부러진 부분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봐.’

희진이는 언제 왔는지 오빠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다 원무과에서 나온 나를 보며 다가왔다.

‘외숙모, 놀래셨죠? 뭐라고 해요?’

‘응. 오늘 늦게라도 수술한다고. 늦어질 수 있으니 오늘 입원하라고 하더라고. 입원이랑 수술 안내받았어. 주차는 잘했어? 차를 너무 이상하게 세워놔서 힘들었지? 진짜 너무 고마워.’

‘네. 지하 2층에 세워뒀어요. 뭘요. 병원이 가까워서 다행이었어요.’

‘응. 진짜 고마워. 덕분에 의사 선생님도 잘 만났어.’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뭘 해야 돼요?’

‘응급실 가서 추가 검사받고, 입원실 안내받으면 거기 있으면 된대. 우린 응급실로 갈 거고, 보호자 한 명밖에 못 들어가니깐 희진이는 이제 집에 가. 쉬는 날인데 얼른 가서 쉬어야지.’

‘현우도 일 끝나면 온다고 했으니깐 조금 더 있다가 오면 같이 갈게요. 아가들은요?’

‘응. 큰언니가 맡아주기로 했어. 어머니랑 통화가 된 것 같더라고.’

‘그래도 어머니랑 할머님이 곁에 계셔서 다행이에요.’

‘응. 진짜 감사할 일이지. 넌 얼른 가봐. 쉬어야 되는데, 쉬지도 못하고 진짜 고마워. 내가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고마워. 이제 난 오빠랑 응급실에 가야겠다.’     

희진이와 이야기를 끝낸 후 준호 씨에게 계속 하소연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갔다.

‘오빠, 이제 우리 응급실에 가야 돼요. 준호 씨 정말 감사해요. 이제 제가 있으니까 회사 다시 들어가셔도 될 것 같아요.’

‘네. 제수씨, 많이 놀라셨죠? 수술 잘 될 거예요. 그럼 난 회사로 갈게.’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알겠어. 고마워. 소장님한텐 내가 전화할게.’

‘그래. 또 통화하자.’     

1층 응급실 앞. 함께 온 희진과 준호 씨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응급실에는 보호자 1명만 동반이 가능했기 때문에 희진이는 병원 안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희진이는 필요하면 전화 달라는 말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가는 나와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준호 씨에게 다시 한번 망치와 포클레인 삽 쪽에 부러진 철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진료실 간호사가 적어준 쪽지를 보며 응급실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응급실은 복잡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심전도와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다 받고 다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대기실로 안내를 받았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오빠를 밀어 대기실로 왔다. 오빠의 고개가 자꾸만 앞으로 숙여졌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저기요, 저희 남편 오늘 응급수술해서 추가 검사했는데요. 혹시 검사가 더 남았나요?’

‘아뇨. 왜 그러시죠?’

‘오늘 늦게 수술한다고 입원하라고 했거든요. 검사 다 했으면 입원실로 올라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남편이 힘든지 자꾸 고개를 떨구고 신음소리도 나서요.’

‘검사결과가 확인되어야 입원이 가능하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겠어요?’

‘그럼 저기 빈 침대도 많은데, 입원실 갈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으면 안 될까요?’

‘저기는 응급환자들을 위한 베드예요.’

‘저희 남편도 응급환잔데요.’

‘환자분 많이 힘들어하실까요?’

‘네.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럼 진통제를 더 놓아드릴 수 있어요. 놓아드릴까요?’

‘지금도 진통제 맞고 있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힘들어하시면 더 놓아드릴 수 있다는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통제말고 베드에 누워있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요.’     

간호사와 말이 점점 격해지는 걸 느꼈는지 경력이 좀 더 있어 보이는 다른 간호사가 말을 이었다.

‘환자분 많이 힘들어하세요?’

‘네. 휠체어에 앉아있는데도 힘들어해서요. 어디 좀 누워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여기는 응급이신 분들이 누우셔야 해서요. 응급상황인데 베드가 없으면 곤란하잖아요. 아시죠?’

‘저희 남편도 응급환잔데요. 오늘 긴급수술도 잡혔고요. 저렇게 아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급하게 베드가 필요한 환자분이 생길 수 있어서 침대를 비워놔야 해요.’

‘하...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그럼 계속 저렇게 앉아서 불편하게 기다려야 된단 말인가요? 여기서 누워있을 수 없다면 입원실에 올라가서 누워있을게요.’

‘입원실도 지금 들어가실 수 있는지 확인 중이고요, 비어져 있다 해도 다른 환자분과 함께 계셔야 되기 때문에 검사하신 결과가 확인돼야 올라가실 수 있어요.’

‘결과가 언제 나오죠?’

‘피검사는 최대 2시간까지 소요되세요.’

‘... 그럼 최대 2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씀이신가요?’

‘네. 방법이 그것밖엔 없어요.’

‘누워있는 것도 안되고, 지금 다쳐서 응급으로 들어온 사람을 그냥 앉아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된다고 하시는 거죠?’

‘네...’

‘일단 알겠습니다.’     

큰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남편이 일어나 있었다.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누워있게 베드 좀 달라고 했더니 안된대. 오빠는 응급환자가 아니래. 웃기지?’

‘입원실은?’

‘것도 검사 결과가 나와야 된대. 피검사가 최대 2시간 걸린다나? 이제 피 뽑았으니 2시간 동안 기다려야 된대.’

‘나 피 아까 뽑았어.’

‘응?’

‘오전에 접수했을 때 뽑았다고.’

‘지금 안 뽑았어?’

‘응.’

‘피검사 때문에 안된다더니 무슨 소리야 그럼. 보지도 않고 얘기했구먼. 잠깐만 있어봐.’

평소 같으면 그냥 있으라며 말렸을 남편인데, 많이 힘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접수대로 가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피검사를 오전에 했다고 하는데요.’

‘네?’

‘피검사를 오전에 했대요. 접수하고 바로 뽑았대요. 여기 보니까 지금은 심전도랑 엑스레이 촬영만 했네요. 피검사한 지 2시간 지났고, 심전도랑 엑스레이 촬영은 결과가 바로 나오는 거 아닌가요?’

‘보호자분. 제가 아까도 설명했지만 결과가 나왔다고 바로 입원하실 순 없어요. 절차가 있어서 저희가 빨리 해달라고 해도 입원실 쪽에서 회신이 없으면 가실 수가 없어요. 병동이 비워져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요.’

‘아니, 병동 없다고 해서 비어있다는 1인실로 입원하는데, 왜 병동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거죠? 1인실이니까 다른 분들이랑 마주칠 일도 없잖아요. 여긴 누워있을 수 없고, 검사결과 다 나왔고, 입원실 비어있고, 그럼 바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쪽에 이렇게 얘기해 봤자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그럼 마냥 앉아서 기다리라고요? 언제 되는데요?’

‘저희도 확답을 드릴 수가 없어요. 다시 한번 요청해 보도록 할게요.’

‘... 대학병원이니까 바쁘신 건 이해하는데, 남편이 많이 힘들어해서 그래요.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결국 꽉 채운 2시간이 지나서야 입원실로 올라가도 좋다는 전달을 받았다. 그때까지 남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진통제는 더 아프면 맞겠다고 했다. 덕분에 기다리는 2시간 내내 휠체어에 앉아 낑낑댔다. 깜빡 잠이 들기도 했지만 금방 다시 일어나 낑낑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속상했다.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이나 안내 데스크 앞을 서성거렸지만 일부러 모른척하는 것처럼 간호사는 내 눈길을 피했다. 계속 모라 할 순 없어 안내데스크 앞을 서성거리며 일부러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아직 대기 중이야. 몰라. 입원실에서 연락이 안 왔대.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된대. 오빠? 아픈데 진통제는 안 맞겠대. 더 아플 때 맞을 거래. 계속 휠체어에 앉아있는 거지 모. 등등... 마음은 안내데스크에 가서 더 크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괜한 진상짓으로 남편에게 불이익이 갈까 싶어 참았다. 2시간 여가 지나고 간호사가 반가움과 안도감이 섞인 목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이 소리를 통해 내가 얼마나 불편한 보호 자였는지를 느꼈다.     

 희진이는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 이제 그만 가봐. 우리 두 시간은 걸릴 거래. 입원실에서 연락이 와야 올라갈 수 있대. 준호 씨도 가셔도 된다고 해. 아 가셨어? 그랬구나. 그럼 너도 가봐. 빨리 가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마저  보도록 해. 연차를 너무 뺏어버렸다. 현우도 온다고? 그럴 필요 없어. 전화해서 오지 말라해. 희진이도 얼른 가고. 네가 있다고 생각하니깐 더 신경 쓰여.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 아휴. 큰언니는 오빠 다친걸 왜 단체톡에 올려서 다 걱정하게 만든대니? 얼른 가라니깐. 주차비도 많이 나와. 뭐? 수술을 보고 간다고? 수술은 저녁에 한다는데, 무슨 수술까지 보려고 해? 그냥 가. 수술 전까지 입원실에 있을 텐데. 어차피 얼굴도 못 보잖아. 그냥 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가는 걸 보겠다고? 그 잠깐을 보려고 기다린다고? 됐어. 내가 차라리 동영상을 찍어서 올릴게. 엄청 신경 쓰이니깐 그냥 좀 가줄래? 아휴. 나도 모르겠다. 그냥 네 마음대로 해 ‘ 

집에 가지 않고 기다려주는 희진이가 한편으론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웠다. 병원과 가까운 거리라 집에 갔다 일이 생기면 다시 와도 되는데, 좀처럼 가려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 얘기하고 싶은데, 또 언제 남편을 부를지 몰라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의미 없는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오갔다. 결국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입원실은 오 층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남편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응급실에서 알려준 병실로 향했다. 유리문이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아 벨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렸고, 다시 안내데스크로 안내받았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 식사 시간과 가족의 질병, 음주 및 흡연 등 평소 생활식습관에 관한 질문이었다. 평소 담배를 한 갑 정도 피우는 남편에게 수술 후 절대 금연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지던 때였다.     

‘그럼 수술 전엔 피워도 되나요...?’     

남편의 질문에 순간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남편은 진지했다. 잠시 뒤, 간호사와 마주 보며 한소리씩 이어갔다.

‘당연히 안되죠.’

‘다친 사람이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 아직 덜 아팠구먼.’

‘아니, 수술 후에 피면 안 된다고 하니깐 수술 전엔 피워도 되는지 물어본 거지. 당분간 계속 못 필 거 아냐.’     

남편의 변명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다쳤다는 생각에 걱정만 했다. 눈을 살리려면 당장 수술해야 된다, 그래도 파편이 눈에서 멈춰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란 생각 등 눈과 건강 걱정만 했다. 정작 남편의 마음을 읽진 못했다. 수술 후에도 예전의 시력은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시력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에 남편은 더 속상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들 생각도 했을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담배 생각이 간절했을 것이다. 남편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잘됐네. 맨날 냄새나고, 담배 피우러 나간다는 것도 싫었는데. 이참에 아예 담배 끊음 되겠다. 하느님이 담배 끊으라고 이런 일을 겪게 해주시는가 보네.’

‘...’

마음과 다르게 입에선 쓴소리가 나왔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간호사는 빠르게 다음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몇 가지 서명과 동의서를 작성한 후 입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입원하면서 병실을 몇 번 와봤는데, 1인실은 처음이었다. 병실침대만 한 널찍한 소파, 옷장, 개인용 의자 2개, 협탁, 화장실 입구 앞에 있는 세면기, 간단히 샤워까지 할 수 있는 개인화장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간이침대를 뺄 수 있는 공간도 넓었고, 뷰도 끝내줬다. 오십만 원. 하루 입원비였다. 1인실은 추후 실비 및 다른 보험처리도 안 된다고 했다. 안과병동에는 비어있는 다인실 병실이 없었다. 다른 진료과인 2동에서 5동에는 남아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수술이 언제 될지도 모르고, 남편이 어떻게 될지 몰라 해당 진료과의 병실을 선택했다. 위기상황에선 같은 병동에 있는 게 낫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1인실의 뷰와 편안함을 만끽했다. 

 남편은 빠르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는지 금세 코 고는 소리가 이어졌다. 조용히 병실에 앉아 돈의 위력을 느끼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콜록콜록. 남편의 기침소리가 이어졌다. 이불을 다시 덮어주는데, 남편이 눈을 떴다.

‘추워?’

‘아니, 목이 잠겼나 봐.’

‘아, 물 마시면 안 된다고 했는데, 입술에 적셔줄까?’

‘응.... 고마워...... 많이 놀랬지?’

‘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생각해봐 봐. 그 파편이 다행히 눈에서 멈췄으니 다행이지.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고 생각해 봐. 아니 머리에 박혔으면? 아니 처음부터 눈이 아니라 목, 머리, 이렇게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곳에 박혔으면 어떻겠어? 그렇게 생각하니깐 차라리 눈에 박힌 게 다행이다, 감사하다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이 아니야. 얼마나 다행인데. 앞으로 치료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감사하면서 잘 이겨내자. 알겠지?’

‘그래.’

‘그건 그렇고 오빠 일인실 와본 적 있어? 여기 엄청 좋네. 소파도 있어!’

‘그래. 전망도 좋네.’

‘그러니깐. 병원이 산에 둘러 쌓여 있어서 전망도 끝내줘. 그리고, 개인 화장실도 있고!’

‘그래. 잘됐네.’

‘응.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일인실 병동에 와보겠어. 좋은 구경시켜줘서 고마워.’

‘그래.’     

평소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신랑이었지만 다쳐서 그런지 무뚝뚝한 대답만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갔지만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무슨 말을 이어갈지 생각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왔다.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7시에 수술 들어가실 거예요. 그전에 혈압 체크 좀 하겠습니다.’

‘입이 자꾸 마르는데, 물은 마시면 안 된다고 하셔서...’

‘네, 마시면 안 되세요. 음... 입을 헹구시는 건 괜찮은데, 가글 좀 하시는 건 어떠세요? 입술에 적셔도 되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네. 혈압 정상이시고요. 수술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조금 있다 다시 오겠습니다.’

‘네.’

‘쉬세요.’     

간호사가 혈압을 체크하는 동안 희진이에게 카톡이 왔다. 정말 수술까지 보고 갈 생각인 듯했다.

‘외숙모. 현우도 왔어요. 저희 지하 식당에서 밥 먹을 건데, 필요한 거 없으세요?’

‘에휴. 얘도 참 말을 안 듣네. 현우도 도착했나 봐. 둘이 식당 가서 밥 먹을 거라 하네. 오빠 필요한 거 있어?’

희진이에게 전화를 걸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희진이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외숙모.’

‘너도 참 고집이 대단하다. 아니 연차면 집에서 쉬어야지. 이렇게 보내면 어떻게?’

‘어차피 지금 가도 마음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못 할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현우도 왔어요. (현우) 외숙모, 저 왔어요. 삼촌은 어때요?’

‘그래, 카톡 보고 연락하는 거야. 현우까지 피곤하게 해서 어떻게 해. 고맙다 진짜. 잠깐만, 스피커폰으로 바꿀게. 삼촌이랑 통화해.’

‘삼촌, 괜찮아?’

‘어. 괜찮아.’

‘삼촌은 관리 잔데 사무실에 있어야지 왜 밖에 나가서 일했어.’

‘작업자한테 지시해 놓고 확인하려고 나갔지.’

‘그런 걸 왜 삼촌이 해? 밑에 사람 시켜야지

‘밑에 사람이 없으니깐 내가 했지...’

‘그럼 조심했어야지.’

‘그러게나 말이다... 아니 그렇게 떨어져 있었는데, 그 넓고 넓은 자리에서 파편이 눈에 박힐 줄 누가 알았겠냐고.’

‘에잇! 그러니깐... 다 잘 될 거야. 내가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삼촌, 뭐 필요한 거 없어? 배고프지? 뭐 좀 사다 줄까?’

‘물도 마시지 말래. 어차피 보호자 한 명만 있으면 된대. 밥 먹고 가도록 해. 숙모 있어서 괜찮아.’

‘아. 물도 못 마셔? 힘들겠다. 여기서 희진이랑 저녁 먹고, 삼촌 수술 보고 갈게. 수술 끝나면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땐 밥도 안 줄 거 아니야.’

‘그런가? 그건 모르겠네.’

‘그럴 거야. 여기 샌드위치 집 있어. 이거 사놔야겠다.’

‘그래.’

‘응, 이따 봐 삼촌.’

‘그래, 알겠어.’     

7시 되기 10분 전. 연세가 좀 있으신 남자분이 이동 침대를 끌고 오셨다. 

‘환자분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확인 후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이동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쳐다봤다. 퉁퉁 부은 눈과 새까매진 얼굴을 보며 가슴이 쓰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리자 수술실 앞에 앉아있는 현우와 희진이가 보였다. 

‘삼촌...’

현우가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다. 수술 잘 받고 오라는 짧은 인사를 마친 후 남편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수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어떤 시간보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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