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달렸다. 달리는 게 아이 낳는 것보다 더 싫은데, 어떻게 그렇게 달렸는지 모르겠다. 집 앞 편의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 아이들!’ 남편에게 가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가면서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으셨다. 수영장에 가실 시간이었다. 큰 시누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오빠가 다쳤대요. 저 병원 가야 되는데, 애들 좀 부탁드릴게요.’
‘뭐? 얼마나 다쳤다는데?’
‘모르겠어요. 눈이 다쳤다는데, 응급수술받아야 된대요. 서울대병원에 있어요.’
‘아이고. 어떡하냐? 지수는 운전할 수 있겠어? 같이 갈까?’
‘아니에요. 언니는 애들 좀 챙겨주세요. 운전할 수 있어요.’
‘내가 봤을 땐 운전 힘들 것 같은데. 같이 가자.’
‘아니에요. 갈 수 있어요. 엄마가 지금 전화를 안 받으셔서 언니한테 전화했어요. 애들 5시쯤 집에 오니깐 좀 부탁드려요.’
‘응, 그건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갔다 와. 상황 바로바로 알려주고.’
‘네. 감사해요.’
부모님은 너무 걱정하시니깐 오히려 상황 파악이 된 뒤에 연락드리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전활 안 받으신 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이 되었다. 집에 가서 차키를 챙겨 나와 시동을 거는데 아버님께 전화가 왔다.
‘민수 많이 다쳤냐?’
‘네? 아. 안과로 갔는데, 대학 병원으로 가라고 했대요. 바로 응급수술 해야 된다고요.’
‘어쩌다 다쳤대?’
‘일하는데 파편이 튀었대요.’
‘그래서 지금 가는 거냐?’
‘네. 서울대병원으로 가요.’
‘그래. 알았다.’
아버지와 전화를 끊고 얼른 카톡을 살폈다. 역시나 시누언니가 단체톡에 글을 남겨놨다.
‘민성이 눈 다쳤대요. 지금 지수가 서울대병원으로 간대요.’
어디가 다쳤냐, 얼마나 다쳤냐, 어떡하다 다쳤냐, 왜 다쳤냐, 어떻게 되는 거냐 등등.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던 가족톡은 난리가 나 있었다. 평소 알림을 꺼 놨었는데, 그래서 난리가 난 단체톡의 상황을 알지 못한 거였다. 놀라셨을 어른들을 생각하며 카톡에 답장을 남겼다.
‘민수오빠 일하다가 눈에 파편이 들어갔대요.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수술하려고 대기 중입니다. 저는 지금 서울대병원으로 출발하고, 아이들은 큰언니가 돌봐주기로 했어요. 자세한 건 병원 가서 상황 보고 말씀드릴게요.’
답장을 쓰고,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전화벨이 울렸다. 큰 시누언니, 작은 시누언니, 어머님, 친정엄마까지 계속 전화가 오고 있었다.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통화를 하며 알리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전화를 살피는데,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희진이었다. 큰 시누언니 둘째 아들의 며느리. 즉, 조카며느리였다. 나이차이는 얼마 안 났지만 엄연히 손아래 사람이었다. 갑자기 확 짜증이 났다. 상황이 궁금하고 얘기해주고 싶어 전화한 걸 알지만, 지금은 내 상황이 급했다.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으로 속도를 높여서 운전하고 있는데, 손아래 사람한테까지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상황에 이성이 폭발했다. 차량 핸들에 있는 통화버튼을 눌러 핸즈프리를 연결했다.
‘외숙모!’
‘응, 희진아. 나도 지금 가는 중이야. 나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거든. 알게 되면 단체톡에 올릴게. 알겠지?’
이미 이성을 잃은 나는 인사도 생략하고 내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짜증과 화가 목소리에 묻어났다.
‘외숙모, 그게 아니고요. 제가 지금 가고 있어요. 15분 뒷면 도착해요. 제가 삼촌 보고 있을게요. 외숙모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놀라고 정신없는... 이런 일에 경황이 전혀 없던 나는 내 생각에 파묻혀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그러니깐 조카들이. 이제 막 결혼한 조카며느리가 단지 상황을 물어보려고 전화를 하는 아이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웬만해선 안 하려 한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극히 나를 위해 전화를 걸어준 아이한테 난 성질과 짜증만 냈던 것이다.
‘아, 어떻게? 일은? 그러니까... 미안해. 희진아. 전화가 자꾸 오니깐 너도 어떤 건지 물어보는 건지 알았어. 미안해.’
‘괜찮아요. 정신없으시죠? 사실 오늘 아무한테도 말 안 한 연차였어요. 집에서 넷플 드라마 몰아보기 하려던 참이었거든요. 근데, 카톡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여기서 서울대병원 가까우니깐 제가 얼른 가서 삼촌이랑 같이 있을게요.’
‘고마워. 나는 아직도 한 시간도 넘게 남았어.’
‘제가 가서 삼촌 옆에 있을게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응. 진짜 고마워. 최대한 빨리 갈게.’
‘네. 조심해서 오세요.’
‘응.’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눈물이 흘렀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십여분 정도가 남았을 때 희진이에게 카톡이 왔다.
‘외숙모. 여기 차가 엄청 많아요. 제가 입구에 있다가 주차하도록 할게요. 근처 오시면 연락 주세요. 삼촌은 아직 진료 대기 중이에요.’
‘응. 고마워. 이제 10분쯤 남았다고 되어있거든. 조금 뒤에 전화할게.’
‘5분 뒤에 나갈게요. 2동 입구로 오세요.’
‘전화하면 나와도 될 것 같은데. 암튼 알겠어. 연락할게.’
‘네.’
서울대병원 주차장으로 내비게이션을 찍어서 내 차는 병원 뒤에 있는 주차장을 향해 갔다. 다행히 병원 입구 앞에 서 있던 희진이를 발견하고 황급히 차를 돌렸다. 뒤차가 클랙슨을 크게 울렸다. 비상깜빡이를 켠 뒤 희진이를 태웠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2동 입구로 가서 차를 세웠다.
“여기 이층으로 가시면 돼요. 곧 진료 볼 거예요”
차키를 받고, 운전석으로 향하는 희진이가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안과라고 쓰여있는 진료실로 향하며 오빠와 함께 있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병원 왔는데, 어디세요?’
‘2층 안과로 오시면 돼요.’
‘여기 안과예요. 어디로 가요?’
‘아, 20번, 아니 17번 진료실로 오시면 돼요.’
‘네.’
17번 진료실 앞에 가자 모르는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빠 동료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들어오시면 돼요. 아직 진료전이예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진료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