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80년생 김민수이야기

by 더 로사 The ROSA

나는 밀레니얼의 첫 세대다. 그러니까 내가 1년만 먼저 태어났다면 나는 밀레니얼 세대가 아닌 X세대였을 거라는 얘기다. 누나가 둘 있는 집안의 막내아들. 위의 누나 둘이 황달로 태어나자마자 죽는 일이 아니었다면 누나가 넷 있는 집안의 막내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을 때마다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일주일간 진통은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셨다고 했다. 산파가 두 번이나 왔다 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아이 낳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들을 낳겠다며 딸을 넷이나 낳으셨다. 유난히 얼굴이 노랗던 세 번째 아이가 하늘나라로 돌아갔을 때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 다짐하셨다고 한다.

떠난 아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던 어느 날, 어머니의 시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가 어머니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너는 우리 집안에 와서 아범 대를 끊어놓으면 어떡하니?’ 오 남매 중 세 번째 아들. 장남도 아니고 차남도 아닌 세 번째 아들이었다. 북에서 피난 나와 제대로 된 집도 없었던 남편이었다. 그저 남편이 좋아서 대궐 같은 집을 떠나 둘이 지하방을 얻어 살았다. 나중에 어머님이 집 나간 딸을 보러 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고 했다. 그 좋은 집을 놔두고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다고... 그런 집에 시집와 안 해 본 일 없이 이일 저일 다했다. 출산의 고통을 참아가며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중 하나는 마음에 묻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대를 끊어놨다’는 소리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억울했고, 슬펐다. 그 젊은 청춘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소용없었다. 내 발로 걸어 나온 집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 내 힘이 닿는 한, 아들 낳을 때까지 낳아볼 테다.’ 그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청춘을 다 바쳐 사랑한 대가였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아들이 바로 나 김민성이었다.

누나들과는 나이차이가 많았다. 첫째 누나가 11살 위였고, 둘째 누나가 9살 위였다. 셋째 누나와 넷째 누나가 있었다면 첫째 누나와의 나이 차이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셋째 누나와 넷째 누나는 없었다. 덕분에 외동아들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두 누나들은 X세대의 주역이었다. 청소년기에 6 · 29 민주화 항쟁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시기에 성장하였고, 산업화의 수혜를 받아 물질적 ·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집단이라는 공통된 세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은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만 집중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각종 다양한 대중매체 발달의 시대라는 영향을 강하게 받아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과소비와 향락을 추구하며, 대중문화에 열광한다. 자기주장이 강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려고 하는 것까지 X세대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X세대 [X-generation, -世代]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건 사랑에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들은 일찍이 사랑에 빠져버렸고, 성년이 됨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태어난 후였다. 진실을 늦게 알아버린 무지의 결과는 힘들게 다가왔다. 어린 나이에 이혼녀라는 딱지를 붙인 채 아이들을 돌보는 가장이 되어버렸다. 누나들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힘들게 살 꺼라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아이는 왜 낳고?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낳지 않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사랑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나 자신도 제대로 못 사는데 책임은 무슨.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이었다. 머리를 만지는 부모님은 항상 모두에게 친절하셨다. 반말은 기본이요 더러 손찌검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위와 칼을 든 아버지였지만 그럴수록 더욱 친절해야 한다 말씀하셨다. 가위를 들지 않은 아들은 부모님과 달랐다.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누구든 부모님 몫까지 더해 실컷 두들겨 패줬다. 부모님은 늦둥이 아들에게 관대했다. 남에게 머리를 조아릴지언정 아들에게 맞고 오지 말라고 말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는 법. 아들은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갔다.

3년째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4학년 형들이 그를 불러 따라오라고 했다. 세명이었다. 본능적으로 폭력을 피할 수 없음을 느꼈다. 부모님 미장원에서 몰래 가지고 온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제일 만만한 한 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윽’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다른 형들이 달려와 떼어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쓰러진 형 위에 올라가 계속 얼굴을 때렸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교장실에 부모님이 오셨다. 아버지는 당당하셨다. ‘그럼 형들한테 맞고 있어야 했냐’고 따지셨다. 애가 얼마나 무서웠겠냐며 교장실이 떠나가라 소리치셨다. 그렇게 당당했지만 ‘퇴학’ 처분이라는 말에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작아지셨다. 퇴학은 이주안에 전학 가는 걸로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갑자기 전학 온 3학년 남학생은 싸움꾼의 타깃이 되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사고 치면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을 힘이 닿는대까지 지키시라는 것을. 이미 효도하기는 글렀다. 서울에서도 맞고 싶지 않아 때리고 다녔다. 서울 아이들은 영리했다. 싸움 좀 하는 그를 적으로 삼는 대신 친구가 되었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의 바람이 이뤄졌다. 사고 치지 않는 아들이 되었다. 왕복 6시간의 통학시간이 생겼다. 잠만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길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만 충실했던 탓에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딱히 대학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남자가 대학은 나와야지. 원하지 않더라도 일단 입학해서 한 학기만 다녀봐. 그다음에도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관두던지.’ 아버지의 반 강압적인 권유대로 지방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대학에 원서를 냈다. 시험을 보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1년 뒤 전라도 지역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한 학기 동안 대학생활을 했지만 결국 휴직계를 낸 뒤 군대에 입대했다. 제대했을 땐 학교가 없어져있었다. 고졸이 되었다.

‘앞으로 뭐 할 생각이니?’

군 제대 후 집에서 뒹굴기만 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물으셨다.

‘글쎄요.’

그럼 내가 아는 곳이 있으니깐 거기 가서 일해라. 이렇게 있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곳은 성인 오락실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거기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앞에 놓인 기계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여기저기서 피워대는 담배연기, 가끔씩 들리는 환호성, 욕하는 소리. 그는 재떨이를 비우고, 잔돈을 바꿔주고, 가끔 오락기를 조작해 주며 돈을 벌었다. 월급보다 심부름시키는 사람들의 팁이 더 많은 일자리였다. 딱히 돈 쓸 곳이 없던 그는 일 년 동안 삼천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건설사 안전관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성인오락실 월급에도 미치는 돈을 받았다. 밥 먹고, 쉬는 1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열 시간 동안 서서 일한 대가였다. 욕이 나왔다. 다시 오락실로 돌아가려 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 계속 그렇게 살 거냐?’ 그렇게라는 의미가 어떤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가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셨다.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건설사에 남아서 계속 일을 했다. 모아놓은 삼천만 원은 이천만 원으로 천만 원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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