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니까

by 더 로사 The ROSA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여기 소변 좀 받아오시겠어요?'


병원을 나온 뒤 바로 앞 샤부샤부 집으로 향했다. 둘 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없애려고 했던 아이라는 걸 알았던지 아이는 혼자 조용히 떠났다. 천사 같은 아이에게 돌을 던졌다. 크고 무거운 돌을.

‘보글보글 보글보글’


육수 끓는 소리가 났다.

연기 때문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야채와 고기를 입 안 가득 넣었다. 너무 뜨거워서 눈물이 났다. 눈물은 빰을 타고 내려와 턱에서 밑으로 뚝 떨어졌다. 고기와 야채는 씹을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너무 뜨거워서 점점 더 뜨거워져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식사를 마친 뒤 오랜만에 집으로 갔다. 그냥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자고 싶었다. 조용히 떠난 아이를 잠깐이라도 기억해주고 싶었다. 그게 아이에 대한 예의 같았다. 아이는 엄마에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왔다 떠나버렸다. 자연유산이라고 했다.



오빠도 나도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몸이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다음날 출근을 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딸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이것저것 묻는 엄마가 불편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있다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았다. 지하철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집이 멀어서 다행인 건 종점엔 언제나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엉덩이에 쥐가 난다며 중간에 일어섰을 테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의 신음소리도 무거운 짐도 모르는 척했다. 깊이 잠든 것 마냥 머리를 옆으로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됐을 때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잠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여섯 달이 지났다. 눈으로 하얗게 덮였던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오빠와 헤어졌다는 내 말에 엄마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평범한 날에 평범한 일상이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먹은 날이었다. 초록색 세상이 너무 예뻐서, 꽃이 너무 푸르러서, 하늘이 너무 맑아서. 술을 먹을 이유는 많았다. 딱 정신을 놓기 직전까지 먹은 뒤 자리를 피해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여기서 두 시간만 있으면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은 후 잠이 들었다. 잠이 든 건지 기절을 한 건지 모르겠다.



“아가씨, 종점이에요.”

기사 아저씨 소리에 눈을 떴을 땐 어두컴컴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오빠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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