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을치레

by Rosa Kim

봄의 벚꽃이, 가을의 단풍이 우리에게 유독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들이 머물다간 시간이 순간처럼 짧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늘 손꼽아 기다리고, 찰나의 순간을 더욱 잘 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설레던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화려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때가 되면, 기다리고 있노라면 봄은 오고, 가을은 온다. 그럼에도 여름과 겨울이 길게 느껴지는 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짧았던 그때가 유난히 좋아서 다시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은 바람이 깃들어 있을거다.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좋았던 그때를 복기하고 곱씹는다.

자연현상인 계절을 벗어나 본다. 우리의 삶에서도 사계절이 존재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벅참으로 가득한 봄.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휘청이는 여름. 여러 색의 조화가 눈과 마음들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준 화려한 가을. 하루 건너 찾아오는 한파로 인해 손도 몸도 마음도 차갑게 식어버린 겨울. 삶에서의 계절도 때가 되면 지나가고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봄과 가을이 맞이해준다는 이치를 머리로는 안다. 인생의 절기에는 이상 기후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과 매섭게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보다 퍽 힘이 든다. 희망과 절망을 오고 가며 널뛰는 감정과 거기에 더해지는 조바심까지 결국에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지난 봄과 가을이 마지막 봄과 마지막 가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재미를 잃고, 가슴 벅차게 감사했던 것들에 무던해지고, 일상의 루틴에 싫증이 나고. 지독한 가을에 화려했음도 잠시였다. 가을이었으니까. 이번 가을은 이전의 가을과는 조금 달랐다. 그거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제는 시리고 차가운 겨울이다.

째깍거리는 시계도, 맛있는 음식도, 따뜻한 커피도 멀어져 가는 그런 계절.

아직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가을 치레가 이어져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어져간대도 내가 어떻게 막아낼 재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아름다웠으나 그 진가를 몰랐던 가을이다.

너무 아름다웠으나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다.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으나 그 진가를 몰랐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