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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Jul 19. 2021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

다시, <단테>를 읽다’

 “<단테>를 읽어 본 적이 있나요?”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를 연주를 마친 후였다. 초빙교수로 온 백발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라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물었다.


많은 청중이 지켜보고 있는 공개 수업이었기에 그의 예기치 못한 질문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테의 <신곡>은 그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되어버렸다.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단테의 <신곡>을 반드시 완독 하리라 결심했다. 작곡가 리스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곳의 문화, 예술 속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특히 단테의 <신곡>에 매료된 그는 이 영혼의 여행을 음악으로 재현하고자 ‘순례의 해’ 중 마지막 곡으로 <단테를 읽고>를 작곡했다.

     

그 곡을 익히기 위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피아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주 시간만 20분에 달하는 대곡인 데다, 한 악장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제와 복잡한 기교,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는 일이 기교적으로, 음악적으로 몹시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곡>을 읽기 시작했지만, ‘지옥’ 편을 넘기기도 전에 책을 덮고 말았다. 방대한 양도 그렇지만, 20대의 나에게 사후세계를 묘사한 내용은 너무나 생소하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피아노 연습에 집중해야 할 시간을 뜬구름 잡는 듯한 독서에 할애하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덮어두었던 <신곡>을 30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 들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책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단테의 저승 여행이 더는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흥미로웠다.


세월이 흐른 덕분일까. 단테가 저승에서 만나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도 그와 함께 지옥의 문을 지나 연옥,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했다. 마침내 그리워하던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문 앞에서 만날 때는 내 앞에 천국이 펼쳐지는 듯 황홀했다.    


쓸데없는 걱정과 욕망,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절망하는 연약한 영혼들의 모습, 그리고 마침내 희망이 가득 찬 천국으로 오르는 연옥의 여정은 삶 그 자체였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단테를 다시 읽으며, 리스트의 <단테를 읽고> 악보를 꺼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강렬한 옥타브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불안한 음정으로 지옥의 문을 두드린다.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단테의 구절처럼, 음은 어둡고 절망적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코드는 낮은 음역으로 점점 내려가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장엄하게(maestoso)’, ‘무겁게(pesante)’ 같은 표현과 쉼표 하나하나에서 지옥의 절박함과 공포가 전해진다.           

   

‘울부짖듯이, 절규하듯이(lamentoso)’로 시작되는 긴 프레이즈는 조용히 읊조리듯 여리게 울려 퍼진다. 고요하게 시작된 비탄의 소리는 지옥의 깊은 골짜기처럼 점차 커지고 거세지며, 끝을 알 수 없는 절규가 숨을 조여 온다.      


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 한줄기 빛이 보인다. ‘사랑을 담아서 부드럽게(dolcissimo con amore)’로 표현된 구절에서 어두운 단조의 음악이 밝은 장조로 바뀌며,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 꿈처럼 떠오른다. 높은 음역에서 반짝이는 트레몰로와 부드러운 아르페지오 반주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들의 절망적인 목소리는 이제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종소리처럼 맑고 웅장해진다. 천국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듯하다.   

  


    

다시 연주하는 <단테를 읽고>는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앞둔 우리는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지옥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천국인가. 단테와 리스트가 책과 음악 속에서 나를 이끌며 보여주고 들려준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연주했던 젊은 날이 부끄러워진다. 화려한 기교에만 몰두했던 그 시절의 연주가 그 노교수의 귀에는 얼마나 가볍고 유치하게 들렸을까.


“단테를 읽어 보았나요?”


그때는 당황스러웠던 질문이 이제야 서서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더디고 느린 손끝에서 전해지는 무언의 깨달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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