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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Oct 10. 2023

어쩌다 브라티슬라바

내 생애 첫 홀로 여행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의 의미는 특별하다.


비엔나 여행의  마지막 날,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나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어디를 가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갑자기 엊그제 시내투어에서 만났던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근교의 P 아웃렛이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훨씬 볼거리가 많으니 꼭 가보라는 것이었다.

  

오늘은 가볍게 아이쇼핑이나 하면서 하루 쉬어가자는 결론을 내고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P 아웃렛은 생각보다 멀었고 가는 방법도 조금 까다로웠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의 여직원에게 가는 방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막 떠나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혹시 브라티슬라바 가봤어요?”

“네? 그게 뭐죠?”     


생소한 이름이라 잘 못 알아듣는 나에게 그 직원은 친절하게 메모지에 이름을 적어주며 말했다.     

  

“‘Bratislava’,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돼요. 단지 한 시간만 가면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보석같이 아름다운 곳이에요.”      


사실 브라티슬라바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라는 것, 체코슬로바키아가 연방공화국이었다가 체코와의 분리로 슬로바키아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미지의 나라, 미지의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을까. 어느새 나는 아웃렛을 뒤로하고 브라티슬라바로 향하는 기차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기차로 약 한 시간쯤 가서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도착했다. 첫인상이 왠지 한국의 시골같이 정답고 소박했다.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막막했다. 검색을 하다 구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는 브라티슬라바성부터 가보기로 했다. 계절은 초가을이었지만 성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한 여름 불볕더위처럼 뜨거웠다. 카디건을 벗고 민소매차림으로 언덕을 천천히 오르니 어느덧 브라티슬라바성이다.


아름다운 구시가의 풍경과 흑해로 흘러가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눈앞에 넘실거린다. 잠시 벽에 기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 있었다. 몸과 마음도 평안하고 고요해진다.        



성을 내려와서 발길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돌길로 된 좁은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눈에 보아도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구시가지의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건물들은 작고 오래됐고 아름답다. 이곳저곳에 서 있는 동상들과 오래된 성당들, 아기자기한 기념품 샵들이 한데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 신비하다.      


시청 앞 광장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와인 한잔과 슬로바키아 전통 요리를 시켰다. 난생처음 홀로 하는 여행의 신비한 맛이 보태져서일까.  달콤하기도 하고 쌉싸름하기도 하다.  나 홀로 낯선 곳에 있다는 것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골목길 하얀 건물이 살포시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식당과 카페에 불이 켜지며 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삼삼오오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로 더욱 활기를 띤다.


붉은빛을 자랑하던 노을이 점점 사그라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일몰의 순간은 언제나 숙연하다. 마치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처럼 거룩하고 아름답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너무 늦지 않게 길 떠날 차비를 한다. 점점 어둠이 짙어지는 좁다란 골목길을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는다.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 앞에 나를 맡긴 채 느릿느릿 걷다 보니 저 멀리 기차역이 보인다.  브라티슬라바역 플랫폼으로 비엔나행 기차가 꿈결처럼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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