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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Jan 28. 2022

춤추는 바다, 제주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멍하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바다 풍경과 바람, 노래와 웃음소리, 그리고 ….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꿈을 꾸고 있나?      




J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글벗의 시상식이 제주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왠지 알 수 없는 강렬한 힘이 나를 끌어당겼다. 낯가림이 있는 편인 나였지만 이번 경우는 뭔가  달랐다. 같이 가서 축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축하는 핑계이고 이 멋진 여행의 기회를 잡고 싶었다.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이름을 적으라는 명단에 내 이름 석 자를 적고 마음 바뀌기 전에 바로 그날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붕 뜨며 설레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 한 장의 열차 티켓으로 시작된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처럼, 무언가 특별한 여행이 펼쳐질 것 같은 은근한 기대로 …


제주공항에 내리니 마스크를 뚫고 신선한 공기가 느껴진다. 서울은 강추위에 눈까지 많이 왔다고 하는데 이곳은 봄처럼 상큼하다.  차를 빌려서 제주 문학관으로 향했다. 제주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문학관은 세련된 도서실 같기도 하고 멋진 북 카페 같기도 했다. 숲 속에 위치한 공간이 주는 고즈넉함과 그윽함에 반하여 1층부터 3층까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큰 창으로 보이는 길게 뻗은 소나무들의 초록빛 풍경은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글 쓰는 문우들과의 제주 기행 첫 목적지로 이곳을 정한 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문학관을 나섰다.  

제주문학관



바닷가 뷰의 식당에서 고등어조림과 물 회덮밥으로 제주에서의 첫 식사를 마친 우리는 월정리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까르르 웃음꽃과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웠다.


글로 만난 사람들 이어서일까? 이 모임은 여느 다른 모임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흔하게 화제에 오르는 가족 이야기, 살림 이야기, 정치, 경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풍경에만 집중했고, 지금 이 순간의 나에만 충실했다.


바닷가를 끼고도는 애월의 해안도로를 달릴 때였다.  


“잠깐만요! 이곳 경치가 제일 아름다워요”.


애월 바닷가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H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L이 능숙하게 차를 세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꼬불꼬불한 제주의 해안 길을 나란히 걸었다. 앞에서 걷던 H와 J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바위 위에서 손을 흔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무엇에 홀린 듯 일제히 그곳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검은 바위들이 삐죽삐죽한 가파른 절벽 같은 곳을 서로 손을 잡아주고 뒤에서 밀면서 단숨에 올랐다.


높고 넓은 바위 위에 서 있다. 온통 눈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거친 파도가 발아래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두 다리와 팔을 쭉 펴고 한껏 바람을 맞는다. 폐 속까지 차오르는 신선한 바닷가의 바람을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갑자기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며 춤을 추었다.


 ’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


모두들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멈추며 한바탕 까르르 웃음이 이어졌다.  다시 노랫소리가 이어진다. 바람은 차고 추웠지만 마음만은 전에 없던 충만함과 행복으로 따뜻하게 차올랐다. 바람도 추위도 세월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여행이 좋았나 봐요 “     


프로필 사진으로 쓴 바다 위의 춤 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신기하다. 사진을 통해서도 그때의 행복했던 기운이 전달되나 보다. 잘못 발을 디디면 넘어지거나 떨어질 수도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서의 순간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춤추는 제주는 아름다웠다.  한 장의 스냅사진으로 남은 정지된 풍경 속에서 움직임과 멈춤의 미학을 경험한다.  너울너울 춤추는 파도와 단단한 바위애 몸을 맡기는 순간, 나는 파도가 되고 또 바위가 된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인생의 무대에서 오늘도 멋진 춤을 추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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