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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14. 2018

사랑은 명품을 남기고

밤새 시달리던 모기를 잡은 사람처럼 마음이 개운해졌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빅뱅의 배드보이'가 흐르고 있습니다.

☞ 빅뱅의 배드보이 노래듣기♪



임 사장이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한 여자가 한 남자의 뒤통수를 자신의 핸드백으로 내리쳤다.   

   

“개자식!”    

 

임 사장은 마치 자신이 그 얘기를 들은 것 마냥 움찔했다. 여자의 핸드백은 화가 잔뜩 난 빨간색 명품 가죽 가방이었다. 아마도 꽤 아팠을 것이다. 그런 남자가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이번에는 남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남자 얼굴에 물 컵에 물을 부어버렸다. 영선은 깜짝 놀랐지만, 뜨거운 커피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영선이 나름 안도하는 사이 물 컵을 부은 여자도 좀 아까 핸드백으로 분노의 스윙을 하던  여자와 마찬가지로 화가 폴폴 묻어나는 뒤통수를 보이며 가게를 나가버렸다. 영선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은 갔지만, 또 이런 일이 영선 네 가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났다. 입이 떡 벌어진 임 사장과 뒤돌아 구경하던 진상 손님, 그리고 혼자 핸드백을 맞고 물도 맞은 남자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그 사이 영선만 정신을 차리고 마른행주를 남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남자는 창피함이 없는 얼굴로 선선하게 영선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옷을 몇 번 툭툭 털어 내더니 영선에게 다시 행주를 넘기며 슬쩍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영선은 왜 이 남자가 여자 둘을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가게 자리에 음기가 센가? 왜 이렇게 여자들만 파이팅이 넘쳐?”     


남자가 가게를 나가고 나서야 임 사장은 밉살스러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영선은 임 사장의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지난번 요구르트 셰이크를 뒤집어쓴 사건도 있고 해서 일단 참기로 했다.  

    

“뭐 드릴까요?”

“아메리카노 두 잔. 서비스로 커피믹스 한 잔 될까?”     


임 사장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얼굴로 물었다. 영선은 아까 남자가 닦은 행주로 임 사장의 얼굴을 문질러 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커피 믹스 봉지를 뜯었다. 임 사장이 오면 한참 떠들고 간다는 걸 아는지 진상 손님이 자판 두들김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트북을 열어 둔 채, 가게 문을 나서는 진상 손님의 뒤통수를 보며 임 사장은 다시 꿰매버리고 싶은 입을 열었다.   

  

“저 친구가 요즘 매일 이리로 출근을 하네? 혹시 정 사장한테 관심 있는 건가?”     


임 사장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영선을 쳐다본다. 영선은 시멘트같이 뻣뻣한 얼굴로 커피믹스 종이컵을 임 사장한테 내민다.

    

“아니지, 그러기엔 저 친구가 나이가 좀 어리지. 근데 말이야. 저 친구 저래 보여도 무시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그냥 단골손님일 뿐이에요.”

“그니까 행여나 싫은 소리 하지 말라고. 저 친구 아버지가 저기 사거리에 새로 생긴 빌딩 알지? 거기 빌딩 주인이거든.”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맞으시죠?”

“응, 근데 저 친구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지금 아버지는 빌딩 거의 완공돼서 임대 막 들어가고 정신없을 텐데.”

“아메리카노 두 잔. 8천 원입니다.”

“정 사장도 시집가려면 저런 집으로 가라고. 그래야 아까 그 여자들처럼 명품 가방 휘두르고 다닐 수 있고 좋잖아! 가게를 한다고 해도 임대료 걱정 안 해도 될 거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 참에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그 노총각 소개 좀 시켜 줄까? 돼지갈비 체인점 사장 아들인데 나이가 40이 넘도록 아직........”

“임 사장님은 이번 달에 몇 건이나 계약 성사시키셨어요? 요즘 손님 없다고 부동산마다 난리던데. 며칠 전엔 사모님이 저희 가게 오셔서 얼마나 한숨을 쉬시던지. 어떻게 제가 저 단골손님이라도 소개해 드릴까요? 아버지한테 말 좀 잘해달라고. 그래야 사모님한테도 명품 가방 하나라도 사드릴 거 아니에요?”     


평소 말이 없던 영선의 놀라운 언변에 임 사장은 그제야 입을 닫고 커피믹스 잔을 홀짝거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되는 세상. 선함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는 소리는 개뿔. 예의 없는 사람에겐 자신이 예의 없음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영선은 밤새 시달리던 모기를 잡은 것처럼 마음이 개운해졌다.    

    

  

#노래 소설 - 배드보이(Bad boy)


“우리 그만 헤어져!”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야호! 물론,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그녀에게 듣고 싶던 한마디를 기어코 들었지만, 지금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좋아하는 티를 내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으니까. 그녀를 위한 내 마지막 배려이기도 했다. 나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그녀에게 지어 보였다.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려야 하는 연극배우처럼.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 빈말이라도 떠날 사람 주저앉히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사랑하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남자의 얼굴로 긴 한숨만 내뱉어야 한다.    

 

그녀가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의 표정은 이쯤에서 자기를 잡아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슬픔에 빠져 그녀의 표정을 못 본 척한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안타깝고 아련한 표정을 최대한 지어야 한다. 사실 생각보다 싶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카페에선 적당히 슬픈 음악이 흘러나와 분위기를 한 껏 돋아 준다. 그녀의 얼굴에 후회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갈 무렵, 나는 정성스러운 한마디로 마침표를 찍는다.      


 “미안해. 너처럼 좋은 여자를 잡을 자격이 내겐 없는 것 같다.”     


굵고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바람처럼 그 자리를 떠난다. 뒤통수가 뜨끈할 정도로 따갑겠지만, 절대 뒤돌아보면 안 된다. 뒤돌아보면 돌이 되어버린다는 믿음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와야 한다. 다행히, 현명한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지난번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 나오는 바람에 애를 먹였다. 안녕, 나의 천사!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나를 나쁜 남자라고 부른다. 편하게 말하면 나쁜 새끼라고도 한다. 조금 억울하다. 나를 나쁜 남자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나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연극을 잘하는 것뿐이니까. 이미 마음은 떠났는데 노력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사랑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부디 조금 더 솔직하게 살고 싶은 나의 의지를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방금 헤어진 그녀는 그래도 좀 오래 만난 편이었다. 생각보다 착하고 배려심도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항상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마치 내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부터는 엄마도 하지 않는 내 친구들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젠 그녀를 보며 웃을 수가 없다. 그래서 2주 전부터 그녀와의 연락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그녀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다. 눈치 빠른 그녀는 고맙게도 내가 쓴 각본대로 움직여주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헤어졌다.

     

/약속 장소 XXXX카페. 시간 오후  3시/   

  

사실 그녀를 위해서 더 리얼한 이별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바로 소개팅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녀와 헤어진 카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바로 소개팅을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스릴감도 없지 않았다. 어느새 헤어진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저만치 도망가 버리고 오늘 새로 만날 그녀가 궁금해졌다.


          


다행히 새로 만난 그녀는 귀엽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고, 수줍음도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주었다. 신이 났는지 평소 하지 않던 우스갯소리도 여러 번 나왔다. 그렇게 한참 침을 튀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여운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걸까? 그러는 사이, 갑자기 내 뒤통수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너무 놀라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눈에서 빨간 레이저 광선을 뿜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맙소사! 조금 전에 헤어진 그녀였다. 어떻게 알고 왔지? 재밌는 것은 그녀가 지금 내 뒤통수를 내리친 물건이 얼마 전 그녀의 생일 때 사줬던 명품가방이라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가벼운 가방을 사줄 걸.     


 “개자식!”    

 

그렇게 불을 뿜는 용처럼 한 마디를 내뿜더니, 그녀는 내가 사준 명품가방을 어깨에 메고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꽤 섹시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오른쪽 뺨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고개를 돌려 상황을 보니, 귀여운 그녀가 물 컵에 담겨 있어야 할 물을 내게 뿌린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분명 뜨거운 커피를 부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역시 그녀는 배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제야 내가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사람에게도 새로 만날 사람에게도. 하지만, 이제와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배려 깊은 그녀도 좀 전에 떠난 그녀처럼 자리를 박차고 카페를 나가 버렸으니까. 물론, 착한 그녀의 작은 어깨에도 누군가 사줬을지 모를 명품가방이 예쁘게 걸려 있었다. 안녕! 나의 또 다른 천사! 아쉬운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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