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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Oct 07. 2018

난시

내 모니터 화면이 점심에 먹었던 뿌연 설렁탕 국물처럼 보였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아이유의 안경'이 흐르고 있습니다.

☞ 아이유의 안경 노래듣기♪



줄기차게 들리던 자판소리가 뚝 끊겼다. 영선은 그제야 책에서 눈을 뗐다. 진상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노트북을 열어 두고 가게를 나선다. 아마도 상가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리라. 영선은 그제야 자유를 얻었다는 듯이 책을 덮으며 기지개를 켠다. 안경도 벗는다. 습관처럼 얼굴을 찡그린다. 영선은 난시라서 안경을 벗고 나면 보이는 모든 선들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성은 평소에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매일 뜨거운 커피를 내려야 하는 영선에게 안경처럼 불편한 물건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선은 남들보다 콧대가 낮아서 그런지 안경을 쓰면 자꾸만 미끄러져 내린다.  다행히 영선은 책이나 컴퓨터 화면을 오래 보지 않는 한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의 난시였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만 안경을 쓰는 것이다. 사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안경을 쓰다 벗으면 안경에 맞춰져 있던 초점이 달라져서 한동안 난시가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눈의 초점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영선은 진상 손님이 비워둔 창가 자리로 슬렁슬렁 걸어간다. 그리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피곤한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그때, 건너편 상가 안경점에서 안경을 쓴 여자가 엉거주춤 걸어 나오더니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영선은 그녀가 왜 주저앉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시 안경을 새로 맞추고 나면 며칠은 온 세상이 울렁거릴 정도로 어지럽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할 텐데.......”   

  

영선은 걱정스러운 맘에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진상 손님이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한 손에 딸기 우유를 하나 사들고. 영선과 눈이 마주치자 진상 손님도 머쓱했는지 쥐고 있던 딸기 우유를 등 뒤로 슬그머니 감춘다. 영선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카운터에 적어 놓은 문구를 혼자 속으로 읽었다.     



가끔 카페에 들어와 커피를 시키고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는 손님들 때문에 붙여 놓은 문구였다. 속이 부글부글 했지만, 영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 우유가 커피 우유가 아닌 게 어디냐고. 그리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난시 때문에 진상 손님 손에 무엇이 있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가 자리 쪽에서  빨대 빠는 소리가 잔망스럽게 들렸다. 쪽쪽. 영선은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다시 안경을 썼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노래소설 - 아이유의 안경  

   

“그니까 왜 안경을 평소엔 안 쓰세요?”

“책을 보거나 일을 할 때 빼고 평상시엔 괜찮거든요.”

“안경이 불편하시면 렌즈로 바꾸셔도 돼요. 요즘 교정렌즈들 잘 나왔거든요.”

“렌즈는 더 불편할 것 같은데.”

“흠,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안경으로 하시죠.”     


의사 말대로 렌즈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어코 안경을 고집했다. 안경을 써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안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사물이 모네의 그림처럼 보일 정도로 난시가 심한 편이다. 모네의 그림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모든 세상이 모네 그림처럼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안경을 쓰는 것이다. 



며칠 뒤, 새로 맞춘 안경을 찾으러 안경점에 갔다.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일까? 안경점 실내조명이 다른 상점들보다 유난히 밝아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안경점 주인아저씨가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낸다. 그리고 습관처럼 안경을 닦는다. 주인아저씨의 현란한 손놀림 때문인지 그 모습도 흐릿해 보인다. 


“첨엔 좀 어지러우실 거예요.”     


넘겨받은 안경을 쓰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초점이 흐려진 내 시력을 교정하느라 안경 렌즈는 최선을 다해 내 눈을 옥죄고 있다. 그 옥죄어옴이 뻐근한 어지러움으로 느껴진다. 안경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적응하시려면 며칠은 걸릴 겁니다.”     


안경 점 주인의 예언은 적중했다. 안경 점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는 어지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안경을 벗었다. 두리뭉실하게 번져 보이는 모네의 그림 같은 세상이 다시 나를 반겼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나 씨, 결혼식 준비는 잘 하고 있는 거지?”

“네, 근데 이런 거 두 번은 못하겠어요. 왜 이렇게 정신없고 힘들죠?”

“하하,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점심시간, 같은 부서 여직원들의 평범한 대화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설렁탕 뚝배기에 코를 받고 밥을 먹는다. 뜨거운 김이 화산처럼 뿜어져 나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녀의 행복한 얼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봐야 할 때, 그러니까 일을 할 때만 안경을 쓴다. 물론, 그 순간에도 조심은 해야 한다. 행여나 고개를 잘못 돌렸다간 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사내 메신저에 새로 생긴 단톡 방이 올라왔다. 

  

/총무 팀 박재석 과장님과 우리 팀 정유나 씨 결혼식 축의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린 그냥 유나 씨한테 몰아주기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될까요? 업무상 박 과장님을 더 자주 보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요. 전 사실 박 과장님과 더 자주 보거든요./

/그럼 어쩌죠?/

/그렇다고 양쪽을 다 할 순 없잖아? 우리 부서는 그냥 유나 씨로 통일하자고./

/넵/

/네ㅜㅠ/  

/결혼식 참석 못하시는 분은 축의금 저한테 주세요!/


방심한 사이, 나는 그만 메시지를 다 읽어 버렸다. 덕분에 내 모니터 화면이 점심에 먹었던 뿌연 설렁탕 국물처럼 보였다.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의 이름 때문이다.    


“어머, 윤 대리님! 갑자기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눈이 시려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부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유나 씨가 결혼하는 그 사람이 한때 나와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사내 연애는 절대 알려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던 사람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의 열애 사실을 동료들에게 먼저 선언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안경을 벗어던졌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에는 서럽게 울고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여자가 울고 있는 이유까지도.   

 



#난시라서다행인이유

#보고싶지않은것을보지않을권리

#때론난시는훌륭한도피처다

#아이유안경

#외롭고웃긴가게

#짧은소설

#연재소설

#3인칭관찰자시점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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