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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23. 2018

따로 또 같은 가족

불편하지만 편리한 관계, 가족.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BMK의 물들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 BMK의 물들어 노래듣기♪


      

영선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는 생각에 영선은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영선은 조용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쑤셔 넣었다. 잠시 후, 짧은 진동음이 두 번 울렸다. 


 /나이 42세. 현재 일본식 주점 운영. 만날 생각 있으면 전화 요망!/


문자를 보낸 사람은 영선의 어머니였다. 영선의 어머니는 벌써 여러 번 맞선 후보자 명단을 영선에게 보내주고 있었다. 영선의 마음은 아직 20대 같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영선보다 애가 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선은 그런 어머니의 문자가 영 달갑지 않았다. 그 문자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나이가 각인되기 때문이다. 영선 어머니가 추천하는 신랑감 후보들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자영업 사장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자영업 종류는 다양했다. 해장국, 고기, 치킨, 주점 등등 모두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그나마 먹고살 수 있는 영선과 비슷한 자영업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대개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이었지만, 갚아야 하는 대출 때문에 결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결혼을 한다 해도 30대 중반인 영선보다 20대 여자들을 바라는 남자일 것이다.   


    

무엇보다 영선은 상가에서 함께 장사를 하고 있는 자영업 미혼 사장님들의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인생을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살림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여자를 만나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싶은 바람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현실과 이상의 갭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선호하고 즐겼다. 아니, 어쩌면 하루 벌어 하루 살아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며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처럼 산다는 안도감 하나 누리려고 굳이 복잡한 가족관계를 만들어 힘들고 어렵게 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런 남자들에게 영선이 결혼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심사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선은 이번에도 엄마의 간절한 전화를 외면했다. 물론, 영선이 문자를 무시한 대가는 집에 들어가서 받아야 할 것이다. 묵묵하게 어머니의 싫은 소리를 들어주는 일, 그 일이 영선이 지금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늦은 일요일 오후, 카페 창밖으로 그림처럼 보이는 4인 가족이 스쳐 지나갔다. 영선은 누가 봐도 단란해 보이는 가족을 바라보며 부럽다는 생각보다 신기하단 생각을 한다. 가족만큼 맹목적이고 강압적인 존재들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념과 체제보다 더 강력하게 서로를 옥죄고 구속하면서도 사랑이라 포장할 수 있는 불편하지만 편리한 관계, 가족. 그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영선은 종종 버겁게 느껴졌다. 그런 망상들도 잠시 카페 문밖이 시끌시끌하더니 좀 전에 그림처럼 지나쳤던 단란한 가족이 영선 네 가게로 들어왔다.     



#물들어 - 노래소설    

 

“여기 딸기 스무디 4잔이요!”

“뭐야, 물어보지도 않고 왜 다 똑같은 걸 시켜?”

“그래야 빨리 나오지.”

“여기가 군대야? 우린 인격도 없는 거냐고? 웃겨 정말! 난 아이스커피 마실 거야!”

“엄마 나도 커피!”

“얘가 미쳤어! 엄마가 말했지. 청소년은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

“그럼, 아이스커피라떼!”

“그냥 딸기 스무디 마셔!”

“엄마도 아빠랑 똑같아! 인격은 무슨…….”

“성인이 되기 전에 인격은 없는 거나 다름없어!”

“쳇!”

“엄마! 난 핫쵸코!”

“그래? 그럼 아들은 핫쵸코 마셔!”

“너무해, 정말! 왜 얘 의견은 들어주는 건데?”

“얜 아직 애기잖아!”

“12살이 무슨 애기야!”

“그러니까, 다들 딸기 스무디로 통일하라니깐!”

“싫어! 아무것도 안 마셔!”

“손정미! 너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영선은 당황스러웠다. 우선 확실해 보이는 딸기 스무디와 아이스커피를 먼저 준비할까? 빨리 결정해 주면 좋으련만 손님들은 언제나 주인의 입장 같은 건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 영선은 체념한 채 그들의 메뉴가 정해지는 과정을 묵묵히 기다린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끈에 묶인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내거나 같은 존재는 아니다. 각자 다른 소리를 하고, 서로 같은 말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그 상처를 그냥 참고 견뎌야 진정한 가족이라고 강요받는 존재들이다. 그런 면에서 가족만큼 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반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 또 있을까?  더 무서운 것은 핏줄로 형성된 가족이란 울타리를 죽는 그 순간까지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죽은 후에도 그 관계는 지속된다. 그래서 가족은 그 어떤 집단보다 무시무시한 결속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렇게 서로에게 결속되어 살다가 결국 서로 원하지 않는 모습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그럼, 그냥 각자 마시고 싶은 걸로 마셔!”

“왜 그래? 언제는 하나로 통일하라며?”

“당신이 통일하지 말라며? 인격 지켜 드리겠다고! 내가!”

“그래도 준희는 커피 안돼! 다른 거 마셔!”

“그럼, 아이스모카플라푸치노!”   


따로 또 같은

  

결국, 그들은 각기 다른 음료 4잔을 주문했다. 영선은 4잔의 음료를 부지런히 준비했다. 아이스모카플라푸치노가 거의 준비했을 무렵, 4명의 따로 또 같은 가족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느라 톤이 한층 더 높아져 있었다. 

    

“왜 당신은 기억을 못 해? 아니지,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안 듣는 거지?”

“목소리 좀 낮춰. 창피하지도 않냐?”

“말해봐! 잊어버린 거야, 아님 안 들은 거야?”

“그게 그렇게 중요해? 알았어.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이제 됐냐?”

“손준수 너 가만히 좀 있어. 왜 자꾸 내 신발을 차는 거야?”

“그게 누나 발이었어? 난 테이블인 줄.”

“거짓말 마. 너 알면서 그런 거잖아”

“조용히 좀 해. 엄마 화난 거 안 보여?”

“아, 정말 다들 너무 시끄럽단 말이지!”

“야, 그게 꼬맹이가 할 소리야? 발이나 가만히 있으라고!”

“너도 좀 가만히 있어! 준수 말대로 너무 시끄럽다 정말!”

“당신은 지금 얘 편을 들면 어떻게 해? 아빠가 되어 가지고. 좀 따끔하게 혼을 내야지! 아님, 모범을 보이던가!”

“사돈 남 말하시네! 당신이 가장을 무시하니까 애들도 보고 배우는 거잖아!”

“애들이 지금 날 보고 배웠다고? 얘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건 당신 쏙 빼닮았는데?”

“얘들이 나를 닮을 시간이 있기나 하냐? 하루 종일 너랑 집에서 보내는데?”

“준수를 좀 보라고! 항상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지금도 봐! 당신이랑 말투 똑같은 거.”

“그런 줄 알면서 아들 오냐오냐 키운 건 누군데?”     


과열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영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카페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연인도 아니고 남남도 아닌 가족끼리 싸움이 붙었을 때 끼어들면 정말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으로 이상해서 서로 싸우다가도 누군가 제삼자가 끼어들면 그 제삼자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 결국은 자신들의 싸움을 제삼자의 탓으로 모는 경우가 많았다. 영선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음료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했다. 눈치를 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는데,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난데없이 꼬마 녀석이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으앙!”

“어머, 손준수 너 갑자기 왜 그래?”

“엄마 아빠 때문이잖아! 둘이 자꾸 싸우니까!”

“준수야! 알았어. 그만해. 엄마 안 싸울게. 뚝 그쳐!”

“당신 닮아서 그래.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얘기하거나 우는 거!”

“으앙!”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얘가 더 크게 울잖아!”

“얘가 정말 창피하게 왜 이래! 너 도대체 왜 울어?”     


단란한가족


그러자 갑자기 꼬마가 울음을 그쳤다. 꼬마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울음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입을 연신 씰룩씰룩 움직였다. 아주 잠깐 고요한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울음으로 뒤범벅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느 아이라고……음마 아빤 안달마따고. 나느 나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다시 똑바로 말해봐 준수야!”

“담으거 느무느무 시따고. 시러”

“얜 도대체 뭐라는 거야?”

“난 무슨 말인지 알아. 통역해줄까?”

“뭐라는 건데?”

“나는 아니라고. 엄마 아빠 안 닮았다고. 나는 나라고. 닮은 거. 너무너무 싫다고. 싫어”     


영선은 잠시 할 말을 잃은 가족들에게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카페 안에서는 빨대로 음료를 빨아 마시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음 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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