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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16. 2018

웃고 싶은 여자

결국 나는 선주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노래듣기♪



영선은 가게에서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손님들 앞에서는 비교적 잘 웃는 편이지만, 그 웃음은 만들어질 때부터 주름 잡혀있는 주름치마처럼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웃음일 뿐이다. 그래서 영선은 진심으로 웃는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부러웠다. 진짜 웃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거니까.


“우유 왔습니다.”   

  

우유배달 청년이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섰다. 영선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유배달 청년을 냉장고로 안내했다. 표정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자세히 보면 영선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냉장고 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기 때문일까? 청년도 영선도 냉장고에 우유가 가득 찰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례적인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숙맥 같은 사람들이다. 우유배달 청년이 나가고 영선은 영혼 없는 얼굴로 물끄러미 냉장고를 바라본다. 한숨 대신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웅하고 들린다.


진짜 웃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다시 가게 문이 열리면서 여자 손님 두 분이 들어온다. 영선은 카멜레온처럼 얼굴색을 바꾸고 주름치마처럼 반듯하게 웃는다. 지금은 주름 잡힌 웃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유자차 두 잔 주세요!”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이는 여자분이 주문을 하고 카페 구석에 앉아 있는 여자 손님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간다. 영선은 유자청이 들어있는 유리병을 힘겹게 열면서 힐끔힐끔 구석에 앉아 있는 여자 손님의 얼굴을 본다. 구석에 앉은 여자 손님은 누군가 입김만 불어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 손님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본 얼굴일까? 한번 본 얼굴은 대부분 기억하는 영선은 그것이 내내 궁금했다.


유자차가 준비되었지만, 영선은 차마 유자차가 나왔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두 여자 손님의 분위기가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영선은 유자차를 직접 가져다주었다. 물먹은 솜뭉치처럼 울음을 가득 안고 있는 여자 손님 앞에 유자차를 내려놓고 나서야, 영선은 그 여자 손님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사실 영선이 먼저 떠올린 것은 여자 손님의 얼굴이 아니라 함께 왔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진심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남자의 번지르르한 말과 행동 때문에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남았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연신 방긋방긋 웃던 여자 손님의 해맑은 얼굴을 영선은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영선은 깨달았다. 영선이 여자 손님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를. 같은 사람일지라도 웃고 있는 여자와 울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웃음은최고의성형일지도모른다

          

#사랑이아니라말하지말아요 - 노래소설

         

 “선주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경찰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선주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선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이미 선주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허옇게 말라붙어있었지만, 선주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김 선주 씨 보호자 되십니까?”

 “아, 네! 제가 선주 사촌언니예요.”

 “그럼, 잠시만.......”     


형사로 보이는 남자가 난감한 얼굴로 나를 커피자판기 앞으로 데려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더니 자판기에 넣었다. 어색한 시간이 잠시 흐르고, 커피자판기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을 내뱉었다. 그제야 형사는 내게 커피잔을 건네며 말을 건넸다.


 “전화드렸던 이 선호 경사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지금 상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사기 전과 10 범인 이 무혁이라는 사기범을 운 좋게 검거했습니다. 죄질이 워낙 나빠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소를 하려고 하는데, 피해자인 김 선주 씨가 이 무혁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계셔서 조금 난처한 입장입니다. 다른 피해자들이 있으니 기소는 될 테지만, 범행 사실이 하나라도 누락되면 범인이 죄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선주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거죠?”

 “네, 추측컨대 김 선주 씨가 이 무혁 씨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휴, 저 답답한 것! 제가 지금은 좀 살만해졌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지금까지 정말 힘들게 살아왔던 아이거든요. 근데 너무 착해 빠져 가지고 누가 앓는 소리만 하면 다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아마 이번에도 사기꾼 거짓말에 홀딱 넘어갔나 봐요. 제가 잠시 데리고 나가서 얘기 좀 해 볼게요.”   

  

형사는 부탁한다는 듯 내게 인사를 꾸벅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답답한 마음에 식지도 않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마시다가 사래에 걸렸다. 겨우 기침을 진정시키고, 다시 선주에게 다가갔다. 선주는 여전히 울음을 머금고 앉아 있었다. 문득 선주의 불행했던 과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생은쓰기만한커피커피같은것일지도모른다

      

선주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골에 살아서 몇 번 본 적 없는 이모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선주는 그 이모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아빠도 없이 혼자 남은 선주가 불쌍해서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지만, 엄마가 선주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데려 온 것은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12살밖에 안 된 소녀였지만, 선주는 웬만한 어른 못지않게 집안일을 잘하던 아이였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에게 선주는 불쌍한 조카 그 이상으로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엄마의 바람대로 선주는 자신의 몫을 넘치게 해 주었다. 집안 청소는 물론 웬만한 밑반찬도 거침없이 만들어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선주가 싫지 않았다. 선주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편해졌기 때문이다. 그랬던 선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갑자기 독립 선언을 했다. 가족들은 놀랐고, 서운해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단호하게 우리 집을 떠났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난 후에야 나는 선주가 우리 집을 떠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선주는 우리 가족들과 진짜 가족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의 무신경함과 뻔뻔함이 선주를 못 견디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서로 떨어져 살다 보니, 선주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저 선주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선주가 나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선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선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서운해하며 왜 결혼식에 가족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주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은 결혼식을 못 올렸거든요. 대신에 여기.......”     


선주가 옷으로 애써 가리고 있던 배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랬다. 선주는 그때 임신 4개월 상태였던 것이다. 기가 막혔지만, 선주의 말간 얼굴을 보며 그저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선주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아이가 유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나는 바로 선주에게 달려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선주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주의 얼굴이 짙은 피멍과 함께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내게 선주는 떠지지도 않는 눈을 껌벅이며 계속 미안하다고만 했다.      

“이 바보야! 왜 그러고 살았어. 당장 도망이라도 치지!”

“나도 그러려고 했지. 근데 덜컥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짐승 같던 선주의 남편은 선주의 배가 불러올수록 선주를 괴롭혔고 급기야 아이를 잃어버릴 때까지 선주를 때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도 선주는 몇 년을 더 그 끔찍한 남자와 살아야 했다. 모질지 못한 선주의 성격 때문이라고 하기엔 선주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도 가혹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년 후, 선주의 남편은 술을 먹고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선주 남편의 죽음은 선주에겐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남편을 떠나보내고 선주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반찬가게를 열었고, 밤낮없이 그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 만드는데 소질이 있었던 선주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선주는 장사를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강남에서 꽤 유명한 반찬 가게 사장님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성공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선주는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유자차를좋아하는이유

 

“선주야, 이거 마셔! 네가 좋아하는 유자차야!”     


나는 선주를 경찰서 근처에 있는 카페로 데려갔다. 카페에서도 여전히 눈물을 머금고 앉아 있는 선주에게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내밀었다. 선주가 평소 좋아하는 차였다. 촌스럽다고 놀려도 선주는 항상 커피 대신 유자차를 좋아했다. 선주는 따뜻한 유자차를 받아 들고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그런 선주를 달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주야, 너도 알고 있지? 그 자식이 너한테 사기 칠라고 접근했다는 거. 그래, 넌 똑똑한 아이니까. 단번에 알았을 거야. 그지?”     


선주는 울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선주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속상한 마음에 나는 선주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래? 네가 이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너도 공범이란 소리나 듣게 된단 말이야. 아니, 너 때문에 다른 피해자들까지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알아들어?”     


선주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모기소리 만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했다.    

 

 “알아요....... 언니.”

 “그걸 아는 애가 왜 그래?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 하냐고?”

 “그 사람........ 그 사람이.......”

 “그 사람은 무슨! 그 자식이지! 그래, 그 자식이 뭐? 도대체 너한테 뭐라고 사기를 쳤기에 그래?”

 “그 사람이....... 날 참 많이 웃게 해 줬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기꾼이었던 그 인간이 선주의 인생에 웃음을 안겨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도 기가 차고 화딱지가 났기 때문이다. 선주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울고 있는 선주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남자처럼 선주를 웃게 만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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