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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09. 2018

금연에 실패한 이유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해당 노래를 들으며 읽어 보세요.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빅뱅의 마지막 인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빅뱅의 마지막 인사 노래듣기♪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대부분 반복되는 일들이 많다. 카페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음료를 만들고, 닦고, 청소를 하고, 또 음료를 만들고, 다시 닦고, 청소를 하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무한 반복되는 일들 말이다 물론 손님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꼭 그 시간에 와서 꼭 그 음료를 시켜야 하는 칸트 같은 단골손님 말이다. 그중에서도 영선이 마무리 정산을 할 때쯤 꼭 가게에 들르는 손님이 있다. 바로 상가 맞은편 아파트에 사시는 걸로 추정되는 김 부장님이다.


김 부장님은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꼭 혼자 영선 가게에 들렀다. 늦은 밤 시간이라 주로 허브차를 시키시는데, 차를 시켜 놓고 혼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가게 문을 닫을 때쯤이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작컨대 그 시간이 김 부장님에겐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혼자만의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가게로 들어서는 김 부장님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얼마 전 6개월 넘게 금연에 성공했다고 영선에게 자랑까지 했었는데, 김 부장님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고약한 담배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영선은 애써 숨을 참으며 물었다.


“카모마일로 드릴까요?”

“아니, 오늘은 에스프레소 더불 샷!”

“지금 시간에 커피 드시면 못 주무신다고 그러셨잖아요.”

“네, 어차피 못 잘 거예요. 오늘은.”

“혹시 그럼, 담배도 다시 피우시는 거예요?”


김 부장님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담배를 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영선은 그라인더에서 바로 나온 커피가루를 포터 필터에 꾹꾹 눌러 담았다. 문득, 영선은 예전 아버지가 피시던 파이프 담배가 떠올랐다. 영선의 아버지도 파이프에 담뱃가루를 이렇게 꾹꾹 눌러 담으시곤 했다. 호기심에 영선은 아버지가 물고 계시던 그 파이프 담배 냄새를 몰래 맡아보기도 했는데 그때 나던 담배냄새가 생각보다 좋았던 기억도 있었다. 마치 지금의 커피 향처럼. 그러고 보니 커피는 많은 부분 담배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진득한 커피 원액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담배처럼 독한 에스프레소 더불 샷이 오늘의 마지막 음료일 거란 생각이 드니 영선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 인사는 접어두길 바래~오! 늘 단 하루만큼은~' 흘러나오는 빅뱅의 노래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려다가 영선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에스프레소 더블 샷처럼 까맣게 타들어 간 김 부장님의 얼굴이 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인사 - 노래소설


김대리가 사무실 저편에서부터 한 명씩 인사를 하며 다가오고 있다. 결국, 김대리는 내 자리까지 오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지? 마지막 인사를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직장 생활 짬밥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럴 때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김대리는 지금 임신 6개월 차 임산부였다. 그런 김대리를 조용히 불러 인사팀의 권고사항을 전달해 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날 이후 김대리는 휴가를 며칠 내더니 지난주 금요일 기어코 나에게 사표를 내밀었다. 눈치 빠른 김대리가 임신과 출산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인사팀의 권고사항을 받들인 것이다. 마음이 후련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찜찜했다. 사실 김대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무척 아끼던 직원이었다. 김대리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항상 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해 주었고,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든 알아서 척척 잘하는 유능한 직원이기도 했다. 또 얼마 전에는 내가 간경화 초기 증세로 힘들어했을 때도 내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금연이었는데, 김대리는 내게 금연 패치까지 사다 주며 내 마누라보다 더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런 김대리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축하하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아픈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팀 내년 예산편성과 인원감축 문제 때문이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일을 해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앞으로 출산 휴가를 받아야 할 사람이 팀 내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몸이 무거워지면 야근을 시키기도 힘들고, 출산휴가 동안은 다른 충원 없이 다른 팀원들이 김대리의 일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팀 전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문제로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인사팀에서 내 고민을 먼저 해결해 주었다. 인사팀에서 예산 절감을 위해 비공식적인 명예퇴직 권고사항을 각 부서 팀장들에게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김대리는 인사팀의 권고사항이 의미하는 바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김대리를 위한다는 생각에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아이 때문에 그만두게 될 회사라면 두 달 치 월급을 더 받을 수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 김대리의 얼굴이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와 다르게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팀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던 김대리가 내 책상 앞에 서 있다. 나는 당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김대리가 웃으면서 내게 선물과 카드를 건넸다.


“아니, 김대리! 퇴사 선물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데…….”

“아닙니다. 김 부장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쁜 아이 낳으면 꼭 연락드릴게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건강 조심하세요!”

“그래요, 김대리! 누구보다 내가 제일 서운해하는 거 알고 있죠? 그럼 무사히 출산하고 돌잔치하게 되거든 꼭 부르세요!”


역시 김대리였다. 끝까지 내게 감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보내는 김대리를 보면서 나는 고맙고 안심도 되었다. 어쩌면 김대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과분한 부하 직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김대리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니, 이렇게 김대리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직장 상사인 내게 악감정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물까지 준비하다니! 속 깊은 김대리에게, 나 역시 멋진 퇴사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서둘러 막내 사원을 불렀다. 법인카드를 건네며, 김대리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퇴사 선물을 사 오라고 일렀다. 금액 한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김대리에게 미안했다. 특히 김대리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을 보고 있자니 더욱더 그랬다.



송별회를 해준다고도 했지만, 김대리는 극구 사양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면서 하는 마지막 인사는 대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착잡한 마음에 퇴근시간이 지난 한참 후에도 나는 사무실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쯤, 나는 김대리가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을 풀어보았다. 예쁜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선물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김대리가 내게 준 선물은 6개월 전까지 내가 줄담배 피우던 “말보로 레드” 한 보루였다. 하루에 2갑씩 꼬박꼬박 담배를 피우다가 간 경화 초기 판정을 받고, 정말 어렵게 끊었던 담배였다. 김대리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금연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왔던 사람이 김 대리였기 때문이다. 덜덜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옆에 붙어 있던 카드를 열었다. 김대리의 마지막 인사에 내 간도 내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부장님, 담배 오래오래 피우시길!"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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