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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Aug 26. 2018

외롭고 웃긴 가게

영선의 가게는 어느새 손님들의 어처구니없는 연극무대가 되어버렸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해당 노래를 들으며 읽어 보세요! 

  ☞ 이상은의 '외롭고 웃긴 가게' 듣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조용하고 평범한 날들이었다. 영선은 손님이 없는 텅 빈 가게 안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아주 재미없는 단막극에 나오는 붙박이 소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영선의 가게에 평온을 깨뜨리는 종소리가 딸꾹질처럼 울려 퍼졌다. 따릉 따릉.


“어서 오세요.”


남녀 커플 한 쌍이었다. 여자 얼굴이 눈에 익은 것을 보면, 자주 가게에 왔던 손님이었다. 하지만, 영선은 두 사람에게 아는 척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그 침묵을 참기 어려웠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구르트 셰이크 하나랑 아이스커피 주세요!”


남자의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가게 정중앙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힐끗 쳐다보며 카드를 꺼내 주문한 음료를 계산했다. 평소 영선 같았으면 주문한 음료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아주 무겁게 영선의 입술을 짓누르고 있었다.


“음료 나왔습니다.”


음료 준비가 다 되었을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바닥에 뭔가가 떨어졌는지 남자는 계속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그런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영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달려왔다. 영선은 음료수를 건네는 사이 남자가 짧은 한 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천근만근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여자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넌 지금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 것은 영선이 떨어진 원두커피를 채우기 위해 창고로 들어갔을 때였다. 영선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원두 봉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영선은 원두 봉지를 가슴에 꼭 끼어 안고 가게로 다시 돌아왔다. 남자가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영선이 들을까 신경이 쓰이는 목소리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남자의 목소리가 여자를 더 화나게 만든 모양이었다. 여자는 아까보다 한층 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동안 꾹꾹 참아 왔던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 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년이랑 그 짓거리하고 다닌 게 다 나 때문이란 소리야?”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뭔데?”


남자는 여자의 물음에 주눅이 들었는지 다시 웅얼거렸다. 영선은 재미난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소리가 안 들려서 짜증이 난 사람처럼 조바심이 났다. 생각 같아서는 카페에 틀어 놓은 음악을 줄이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여자가 지금의 상황을 중계방송 아나운서보다 더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차라리 술집 년들이랑 놀았으면 이러지도 않아. 하! 회사 선배? 그것도 내가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그 여시 같은 년이랑? 내가 이런 걸 믿고.......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넌 내가 지난 일주일 간 병원에 입원했던 거 알아, 몰라?” 

“좀, 작게 얘기해! 쪽 팔리지도 않냐?”

"뭐가 쪽 팔려? 그렇게 쪽 팔린 놈이 그랬어? 여자 친구가 병원에 누워 있는데, 그걸 못 참고 딴 년이랑 바람을 피워? 그게 쪽 팔린 짓이란 건 왜 몰라 이 미친놈아!” 

“아, 씨발……”

“뭐, 이 새끼야? 씨발? 지금 네가 나한테 욕한 거야?” 


때마침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더니 손님이 들어왔다. 영선네 가게 단골손님인 부동산 임 사장이었다. 가게에 들어 선 임 사장은 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문했다.   


“아이스커피 4잔. 오래간만에 손님이 왔거든. 아, 혹시 팥빙수도 되나?”

“작작 좀 처먹어! 그게 지금 목구멍으로 들어가냐고!” 


깜짝 놀란 임 사장은 차마 뒤로 돌아보지도 못하고, 영선에게 눈짓으로 재들 뭐냐고 물었다. 영선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 모양으로만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되물었다.


“팥빙수도 드릴까요?”

“아, 아니야. 일단, 아이스커피 4잔만 줘.” 


임 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여자가 기어코 남자를 향해 시원한 요구르트 셰이크를 날려 버린 것이다. 하얗고 묵직한 요구르트 셰이크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영선은 자책했다. 셰이크를 평소보다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망했다. 제발 조금이라도 요구르트 셰이크를 그 여자가 마셨기를! 정확히 그 남자에게만 요구르트 셰이크가 날아갔기를! 하지만 언제나처럼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요구르트 셰이크가 그 남자에게는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남자를 제외한 360도 근방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에만 튀었다. 영선도, 임 사장도 그리고 가게의 모든 의자와 탁자들도 그 하얗고 끈적한 요구르트 셰이크 파편들을 온통 뒤집어썼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던지는 물이나 음료는 참 정확하게 목표물을 조준하던데, 도대체 얼마나 연습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역시,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임 사장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지 헛기침을 하며 까만 양복바지에 묻은 요구르트 셰이크 파편을 연신 털어 내기만 했다. 


남자가 냅킨으로 사방에 튀어 버린 셰이크 파편들을 닦아 내려고 하자, 영선은 바로 말렸다. 끈적거리는 요구르트 셰이크 파편을 휴지로 닦아 내면 더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만두라고 단호히 말하고, 영선은 하얀 행주를 임 사장에게 건넸다. 잘못하면 손님끼리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재빨리 커피 4잔을 내려 임 사장을 가게에서 내보냈다. 정작 사고를 친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입을 꼭 다물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계속 영선과 여자 친구의 눈치를 번갈아 봤다. 


영선은 뚜껑이 열린다는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귀까지 벌게져서 얼굴과 머리 위로 뿌연 김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선은 꾹 참고 사방에 튄 요구르트 셰이크 자국을 닦아 내고 또 닦아 냈다. 그러다가 영선은 바닥을 닦아야 한다는 핑계로 대걸레를 집어 들고 그냥 가게를 나와버렸다. 평소 같으면 손님을 두고 화장실조차 가지 않는 영선이었다.  영선은 더 이상 두 인간의 몰골을 가만히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무자비하게 빨며 영선은 자신의 화를 빨아냈다.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 소설을 읽다.

 

“그럼, 선택해. 회사를 그만두던지 나와 헤어지던지.” 


영선이 대걸레를 빨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아까보다 한층 차분해진 말투로 남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영선은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헤어지겠다고 말해! 어서! 지금 당장! 하지만, 남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알겠다고.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그날 술이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회사 선배에게 끌려갔던 거라고.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그러니 자신의 진심을 믿어 달라고. 영선은 기가 차서 하마터면 대걸레를 던져 버릴 뻔했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가서 사표 던지고 와. 그 여시 같은 년 보는 앞에서. 알아 들었어?”  


영선이 봐왔던 그 어떤 협상보다 막장스러운 결말이었다. 다정하게 손깍지까지 잡고 영선의 가게를 나서는 두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영선은 갑자기 끊어질 것 같은 허리의 통증을 느꼈다. 온 가게를 덮었던 요구르트 셰이크 파편들을 닦아 내느라 생긴 요통이었지만, 분통 터지는 영선의 마음도 한몫을 했다.


욱신거리는 허리를 두드리며 영선은 가게 구석구석을 다시 살폈다.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 있는 하얀 요구르트 셰이크 자국을 바라보며 영선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녀가 하얀 요구르트 셰이크가 아니라 뜨거운 커피를 던졌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상황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영선은 카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게 창문으로 들어선 오후 햇살이 낮잠이 든 어린아이처럼 길게 누워있었다. 그렇게 햇살도 게으르게 드러누운 영선의 가게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제야 영선은 깨달았다. 어쩌면 영선의 가게는 손님이라는 배우를 기다리는 작은 무대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런 무대에서 영선은 배우도 무대도 무엇도 아니었다고. 그냥 존재감 없이 살고 싶었는데, 진짜 존재감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영선은 이제 좋지도 싫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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