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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Sep 30. 2018

다시 오지 않는 손님

동생의 눈동자도 빨간 신호등과 비슷하게 붉어졌다.


[#] 노래를 듣고 떠오른 이야기로 만들어진 미니 연재소설입니다. 참고로 지금 외롭고 웃긴 가게에서는 '워너원 더힐의 모래시계'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 워너원 더힐의 모래시계 노래듣기♪



영선은 자신을 등지고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의 등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영선이 바라보고 있는 저 등짝은 벌써 한 달째 영선의 카페에 출근하고 있는 단골손님의 등짝이었다. 고집스럽게도 단골손님은 항상 저 창가 자리에만 앉았다. 그렇게 햇빛이 제일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꼬박 8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상가에 있는 화장실에 가거나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올 때는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커피 한 잔에 단골손님은 영선의 가게 한 귀퉁이를 완전히 점령해 버린 셈이다.  

    

말 그대로 창가 자리 단골손님은 요즘 흔히 말하는 카페 진상 손님 중에 하나였다. 그럼에도 영선은 그 진상 손님이 싫지만은 않았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간은 어차피 영선 혼자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었고, 그런 적적하고 무료한 시간들을 진상 손님의 노트북 자판 소리가 채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영선의 사생활이 그 진상 손님과 공유되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단골손님들은 사실 영선에게 꽤나 의미 있는 존재들이다. 연락 한 번 나누지 않는 옛 친구들보다 훨씬 더. 그렇게 영선에게 의미 있는 단골손님들은 카페에서 일상을 나누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가게 옆 부동산 임 사장님,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김 부장님, 창가 자리 단골손님 등등. 그중 옆 동네 빌라에 사는 신혼부부 커플 손님이 있었는데, 토요일 오전에 항상 두 손을 꼭 붙잡고 산책하듯 영선의 가게에 들러 캐러멜 마끼아또와 녹차를 나누어 마시곤 했다. 영선은 그 모습이 참 예쁘고 보기 좋아서 눈에 담아 두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 예쁜 커플이 보이지 않았다.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오늘 몇 달 만에 그 단골손님이 영선의 가게에 나타났다.  영선은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조금 의아점이 있었다. 토요일이 아니라 평일이었다는 점, 그리고 커플이 아니라 남자 손님 한 명뿐이라는 점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영선은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손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평일 대낮에 왔는지, 왜 캐러멜 마끼아또가 아니고 아메리카노인지, 왜 둘이 아니라 혼자인지. 하지만 한마디도 묻지 못하고 묵묵히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뽑았다. 홀로 앉아 있는 남자 손님의 붉어진 두 눈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래소설 - 모래시계(워너원 더힐)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다. 동생의 간곡한 부탁으로 집들이에 왔지만, 결국 수연의 발작과도 같은 통증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진통제가 없으면 몇 시간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집들이를 하자고 했던 동생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미안해. 누나!”

“수연이는?”

“좀 전에 잠들었어. 진통제 놔줬으니 곧 괜찮아질 거야. 누나 온다고 수연이가 그렇게 좋아라 하더니 좀 무리를 했었나 봐.”

“애초에 이런 자리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미안해. 근데, 지금 가려고? 잠만 기다려봐. 데려다줄게.”

“됐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아냐, 수연이가 잠들면서 누나 집에 꼭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어.”  

   

동생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치 장례식장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울적한 마음에 운전하고 있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기분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얼마 전 동생은 말기 암 환자인 수연이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생의 폭탄선언에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입을 닫아버렸다. 동생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된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독설과 협박에도 동생은 굽히지 않았다. 결국, 동생은 가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만의 결혼을 강행했고, 살림을 차렸고, 나에게 집들이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나도 그런 동생이 괘씸했지만, 그 누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공존했다. 무엇보다 궁금하기도 했다. 동생을 저렇게 용감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넌, 자신 있는 거야?”

“뭐가?”

“끝이 보이는 사람 부여잡고 사는 거.”   

  

서늘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후회도 되었지만, 동생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당연히 자신 없지. 어떻게 자신이 있겠어?”

“그런데 왜 그렇게 무모한 선택을 한 거야?”

“저렇게 예쁜 사람을 두고 내가 어떻게 다른 선택을 해? 나도 방법이 없었을 뿐이야.”     


동생은 담담하게 웃었다. 그런 동생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내 속도 다시 뒤집어졌다. 불구덩이 속인 줄 알면서 뛰어 들어가는 동생을 말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기적이라도 바라는 거야?”

글쎄......

“너도 너지만, 수연이도 좀 그렇다. 어쩜 혼자 남겨질 네 생각은 전혀 안 한다니?”

“누나, 그런 말 하지 마. 수연이도 할 만큼 했어. 나랑 헤어지겠다고 잠적까지 했었는데, 내가 기어코 찾아가 매달린 거 알잖아.”

너 정말 제정신이야? 앞으로 제일 힘들 사람이 너라는 거 왜 모르냐고!

“알아. 나도.”

“아는 사람이 그래? 너 분명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거라고!”   

  

내 독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차가 멈췄다. 동생의 눈동자도 빨간 신호등과 비슷하게 붉어졌다. 그런 동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더 상했다. 눈물도 핑 돌았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서로 울음을 참기 위해 긴 침묵을 지켰다.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했다. 동생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진정되지 않는 울음을 참아 넘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참고 있던 눈물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한테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말을 나는 찾지 못했다.

    

“누나!”

“아까 얘긴 못 들은 걸로 해. 나도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너 힘들까 봐.”

“알아.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난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알았어. 근데 엄마 좀 신경 써줘라. 요즘 너 때문에 잠도 잘 못 주무신다.”

“응. 노력해볼게. 잘 들어가.”

“그래, 너도 운전 조심하고!”

“근데, 누나.......”

“응?”

“사실, 나도 무서웠어. 그 누구보다 더. 내가 선택한 지금 이 순간들을 후회하게 될까 봐.”

“그래, 그래서 우리가 말렸던 거야.”

“근데, 이젠 괜찮아.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거든.”

“그게 뭔데?”

“누구에게나 시간은 정해져 있다는 거.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사랑도 영원할 순 없다는 거. 수연이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빨리 이별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사랑한다면,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추억을 가지게 된다는 거.”     


동생은 붉어진 눈으로 웃었다. 그리고는 심장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눈물을 무겁게 흘렸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으며 울던 동생은 나를 집 앞에 내려두고 떠났지만, 나는 좀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동생의 마지막 말이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후회하게 될까 봐, 감당할 수 없을까 봐 나는 애완견조차 키우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랑했던 존재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서 사랑도 못하는 바보가 나였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사랑을 품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생을, 나는 나무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가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흐르는 시간에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 그렇게 한정된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 속에 쌓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인 것을 동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나는 미치도록 애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어차피흘러갈시간이라면

#지금이순간을영원처럼기억하리라

#출발역과종착역은같은걸

#옹성우

#모래시계

#3인칭관찰자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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