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소설] 다이나믹 듀오의 "사선에서"

차라리 얼른 심장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조경아



현석은 자신이 병원에 입원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송장과 다름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정신은 어느 때 보다 맑고 선명한데, 현석의 몸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꺼풀을 깜빡이는 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현석은 입원을 하고 처음 며칠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려고 애를 썼었다. 하지만, 곧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죽음은 그에게서 몇 발자국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려움에 소리라도 질러 보고 싶었지만, 이미 현석의 입은 인공호흡기가 틀어 막고 있었다. 꼼짝하지 말고 얌전히 죽음을 맞이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현석의 숨은 현석이 아니라 인공 호흡기가 대신해주고 있었다.


“장인 어른! 좀 어떠신가요?”


현석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최근 몇 년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첫째 사위가 온 것을 보니 정말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현석은 인공호흡기를 뚫고 흘러 들어 오는 강렬한 향수 냄새에 깜짝 놀랐다. 다 죽어가는 현석에게도 후각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현석은 숨이 막힐 듯한 첫째 사위의 냄새에 정신 줄 마저 놓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첫째 사위는 현석의 옆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현석은사위의 등짝을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서 임종을 지키고 있는 첫째 사위가 꽤 기특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옆에 서 있는 줄도 몰랐던 현석의 첫째 딸 민숙이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 이제 가요. 더 이상 착한 척 하는 거 못 보겠으니까.”

“이 사람이, 입 조심해!"


현석은 그게 무슨 의미 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명절에도 자신에 집에 오지 않는 첫째 사위를 보면서 괘씸하기는 했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둘의 이야기를 듣고 현석은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결국, 첫째 사위는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처럼 병실을 나갔다. 사위가 병실 밖으로 나가자, 갑자기 큰 딸 민숙이 울음을 터뜨렸다. 현석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민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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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세상에! 저런 뻔뻔한 인간이 여기가 어디라고!.”

“엄마, 미안해……아빠 때문에 그동안 말도 못했어.”

“이것아,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왜 말을 안 했어? 천하의 개 자식! 그러니까 젊은 년이랑 바람나서 이혼해달라고 그렇게 목을 매더니, 네 아버지 돌아가신다니까. 그 유산 한번 받아보겠다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 아냐?”

“근데,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아빠가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 그렇게 올랐다는 거.”

“아휴, 하필이면 이럴 때 간통 법이 없어져서는, 저런 자식은 콩밥 좀 먹여야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증거가 없어. 내가 사람 불러서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 걸.”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렇게 해. 재산 분배할 때도 그게 유리할 테니까. 그리고 걱정하지 마. 어차피 그 땅은 이제 엄마 소유니까. 그 놈한테는 한 푼도 가지 않게 할게.”


현석은 두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미 자신은 죽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호흡기 덕분이라고는 해도 아직 숨을 쉬고,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두 모녀를 보며, 현석은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석이 꽤 오래 병석에 누워 있기는 했다. 아내도 자식들도 모두에게 이미 몇 년 전부터 현석은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그 사실은 이제야 깨달은 현석은 힘겹게 자신의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제 현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 민정이 왔어요! 아빠……민정이 왔다니까……울 아빠, 어쩌다가 이렇게……흑! ”


현석은 눈을 한번 깜빡였다. 몇 년 전 남편을 따라 호주로 이민 갔던 둘째 딸 민정이가 왔기 때문이다. 혹시나 민정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눈을 계속해서 깜빡였지만 현석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현석의 모습을 보며 소란스럽게 울고 있는 민정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꼴이 얼마나 처참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뿐이다.


“신서방은? “

“나 혼자 왔어. 요즘 가게가 어려워서……사실, 나도 겨우 온 거야.”

“그나저나, 네 얼굴 꼴이 그게 뭐니?”


민숙과 민정은 원래 사이가 그리 좋은 자매가 아니었다. 여우같이 애교 많은 민정과 곰 같은 민숙은 성격 자체가 아주 많이 다르기도 했지만, 둘 사이가 갈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민정이 결혼을 할 무렵이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첫째 사위에 비해 둘째 사위인 민정의 남편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이 많았다. 게다가 결혼을 하자마자 호주로 이민을 가겠다는 민정이 가족들에게 금전적인지원을 요청하자, 민숙은 형편없는 결혼을 하면서 돈까지 달라고 하냐며 민정을 몰아 붙였다. 결국, 민정은 민숙과의 갈등을 풀지 못하고 호주로 가버렸고, 몇 년 만에 처음 현석의 병실에서 민정과 민숙은 마주친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민정을 본 민숙의 첫 마디가 좋게 나올 리가 없었다. 민정은 그런 민숙의 첫 마디를 놓치지 않고 똑같이 물어 뜯었다.


“그런, 언니는 참 좋은 꼴이네. 이혼하신다며?”

“뭐라고? 이놈의 계집애가. 처음 만나자마자 그게 언니한테 할 소리야?”

“그런 언니는?”


현석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할 수만 있다면, 두 귀도 막아 버리고 싶었다. 다시, 현석은 이 병실의 주인도 살아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전쟁과도 같은 두 딸의 싸움이 이어졌다. 다행히 잠시 후, 그 전쟁을 끊어 줄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 작은 누나 왔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현석의 장남이자 막내 아들인 민호가 병실로 들어 온 것이다. 현석은 평소엔 별로 반갑지 않았던 아들의 등장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아들이라고 하지만, 전혀 든든할 것 없는 철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 현석이 가지고 있던 황무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을 알고, 대출을 받아 외제차를 제일 먼저 뽑은 녀석이었다. 이젠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해도 꾸짖을 수 없는 현석이었다.

“넌 신수 좋아 보인다? 참, 너도 결혼한다며?”

“어, 근데 아버지가 저러고 계시잖아. “

“밥은 먹었어? 아들?”

“어, 먹었지. 엄마는?”

“야, 넌 엄마 피곤하실 텐데. 병실이나 지키지.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기만 해? 할 일도 없는 백수가……”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현석네 가족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현석은 그리다 정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인 가족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들으며 잠시 감사하단 생각을 했다. 마지막 가는 길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 봐줄 사람이 있다는 건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또한, 이제 눈을 감는다고 해도 그리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엄마! 아버지 장례준비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민호 이름으로 들어 놓은 상조회사 상품이 있어. 아마 거기서 다 알아서 해줄 거야.”

“저기, 엄마……”

“응?”

“그거, 내가 차 사느라고 계약금을 다 깨 버렸는데……”

“뭐라고?”

“그냥, 이 병원에서 장례 치르면 되지 않나? 요즘은 병원마다 그런 프로그램 다 있다던데.”

“이 자식은 하여튼……. 여전하구나? “

“에휴, 어쩌니…….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

“근데, 여기 1인실이면 입원 비 꽤나 나올 텐데, 괜찮아 엄마?”

“어머, 어떡하니? 그 상조회사 프로그램에 입원비 지원이 있어서 1인실로 했던 건데.”

“그럼, 오늘이라도 병실 6인 실로 바꿀까?”

"엄마! 얘 이러다가 아빠 땅도 다 팔아 먹을 녀석이야."

"그래, 엄마 제발 관리 좀 해. 이 자식한테 엄마 재산 다 넘겨 줬다간 엄마 요양원에 버릴 녀석이라고."

"니들이나 엄마 재산에 관심 꺼. 출가한 년들이 왜 그렇게 엄마 재산에 관심이 많아?"


현석은 갑자기 가슴이 죄어 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심장이 제 멋대로 뛰고 있는 듯했다. 현석은 차라리 얼른 심장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현석은 지금처럼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었다. 언제나 그들의 대화 속에 녹아 들지 못하고 겉돌았다. 현석은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지금 당장 현석이 숨을 거둔다 해도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삶을 살았다는 것이 이토록 후회되고 부끄러울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현석은 눈을 깜빡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숨을 거두고 싶었지만, 현석의 입을 틀어 막고 있는 인공호흡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현석은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한 채, 차가운 침대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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