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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Nov 24. 2016

[노래소설]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나는 더 이상 선주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선주야! 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경찰서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선주를 발견했고,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선주는 나를 보자마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미 선주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지만, 선주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피해자 김 선주 씨 보호자 되십니까?”

 “아, 네! 제가 선주 사촌언니예요.”

 “그럼, 잠시만.......”


형사로 보이는 한 남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자판기 앞으로 데려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더니 자판기에 넣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잔 꺼내 내게 내밀었다.


 “전화드렸던 사기 전담반, 이 선호 경사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지금 상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이 무혁이라는 전과 10범의 사기범을 얼마 전 검거했습니다. 죄질이 아주 나빠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기소를 하려고 하는데, 피해자인 김 선주 씨가 이 무혁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계셔서 저희가 좀 난처한 입장입니다. 물론, 다른 피해자들이 있으니 기소는 문제없이 될 테지만, 이러다가 범인이 죄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 같아서요.”

 “선주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거죠?”

 “네, 추측컨대 김 선주 씨가 이 무혁 씨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휴, 저 답답한 것! 선주 제가 어려서부터 부모를 잃고 어렵게 혼자 살아왔던 아이거든요. 착해 빠져가지고 그냥 누가 좋다고만 하면 다 퍼주는 스타일이라 고생도 많이 했어요. 아마 이번에도 순진하게 사기꾼 말에 홀딱 넘어갔나 봐요. 제가 붙잡고 얘기 좀 해 볼게요.”


형사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졌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식지도 않은 커피를 한 번에 다 마시다가 사래에 걸렸다. 겨우 기침을 진정시키고, 선주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선주가 울음을 머금고 앉아 있었다. 문득, 선주의 불행했던 과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주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골에 살아서 몇 번 본 적 없는 이모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선주는 그 이모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엄마는 아빠도 없이 혼자 남은 선주가 불상해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지만, 엄마가 그런 선주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우리 집으로 데려 온 것은 순전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12살밖에 안 된 소녀였지만, 선주는 웬만한 어른 못지않게 집안일을 할 줄 알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에게 선주는 불쌍한 조카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엄마의 바람대로 선주는 자신의 몫 이상 잘 해내 주었다. 집안 청소는 물론 웬만한 밑반찬도 막힘없이 잘 해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선주가 싫지 않았다. 선주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편해지고 안락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선주는 우리에게 독립 선언을 했다. 가족들은 놀랐고, 서운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주는 아주 단호하게 우리 집을 떠났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선주가 우리 집을 떠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선주는 우리 가족들과 진짜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의 무신경함과 뻔뻔함이 선주를 지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서로 떨어져 살다 보니, 선주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저 선주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선주가 나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선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선주는 대뜸 자신이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화를 내며 왜 결혼식에 가족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주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은 결혼식을 못 올렸거든요. 대신에 여기.......”


선주가 옷으로 가리고 있던 배를 살짝 보여주었다. 그랬다. 선주는 임신 5개월이었던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혔지만, 선주의 말간 얼굴을 보며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선주가 폭행을 당해 아이가 유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나는 선주에게 달려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선주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멍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내게 선주는 피멍으로 부은 눈을 껌벅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주는 내가 얼굴도 본 적 없는 선주의 남편에게 그동안 온갖 매질을 당하며 살았던 것이다. 매질에 못 이겨 떠나려는 순간, 아이가 임신되었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선주는 그 남편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짐승 같은 남편은 선주의 배가 불러올수록 선주를 괴롭혔고, 급기야 이렇게 아이를 잃을 때까지 선주를 때렸다고 했다. 하지만, 선주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선주는 몇 년 동안 매를 맞으며 끔찍한 그 남자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년이 지난 후, 선주의 남편은 술을 먹고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제야 선주에게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 후, 선주는 자신의 음식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나 열었다. 그리고는 밤낮없이 일만 했다. 덕분에 선주는 돈도 꽤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선주는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선주야! 이거 마셔!”


 나는 눈물을 담고 멍하니 앉아 있는 선주에게 믹스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선주가 평소 좋아하는 커피였다. 촌스럽다고 그렇게 놀려도 선주는 원두커피 대신 항상 믹스 커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선주는 따뜻한 믹스커피를 받아 들고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한숨을 말했다. 


 “선주, 너도 알고 있지? 그놈이 너한테 사기 칠라고 접근했다는 거. 그래, 넌 똑똑한 아이니까. 단번에 알았을 거야. 그지?”


선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래? 네가 이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너도 공범이란 소리나 듣게 된단 말이야. 아니, 너 때문에 다른 피해자들까지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알아들어?”


선주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언니.”

 “그걸 아는 애가 왜 그래?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 하냐고?”

 “그 사람........ 그 사람이.......”

 “그 사람은 무슨! 그 자식이지! 그래, 그 자식이 뭐? 도대체 너한테 뭐라고 사기를 쳤기에 그래?”

 “그 사람이........ 날 참 많이 웃게 해줬어요........ 그, 그래서.......”


그래서 선주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천하의 사기꾼이었던 그 인간이 선주의 인생에 웃음을 안겨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도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선주는 그렇게 말도 다 하지 못하고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선주를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런 선주를 웃게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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