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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경아 Feb 14. 2017

[노래 소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뜨거운 커피와 입김에도 내 마음은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마땅히 할 일 없이 집을 나섰다. 한 걸음도 허투루 쓰지 않는 아침 출근길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서 박자를 놓친 내 어색한 발걸음은 자꾸만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바삐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나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내 손자 손녀가 아니라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 그렇게 사람들은 듣는 사람 심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그렇게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렇게 모두의 할아버지가 된 나는 꽤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이다. 특히 몇 년 전 아내가 죽은 후로는 더욱더.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것이다. 그것이 내 며느리를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배려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자식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노인복지센터로 향하고 있어야 했다. 나 같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곳에서 하루 종일 넘쳐나는 시간을 꾸역꾸역 보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평소 엄두도 내지 못했던 작은 모험을 해보려고 한다. 바로 젊은 사람들이 자주 간다는 원두커피 집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나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도 그런 곳에 자주 드나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 그런 일이 많이 낯설고 두렵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나이가 어릴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서 괴로웠는데, 나이를 많이 먹고 나니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많아져서 괴롭기 때문이다. 특히 소심한 노인네의 지레짐작은 참 많은 것들을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어제 복지센터에서 보여준 “버킷리스트”라는 영화 때문이다. 영화는 암에 걸린 노인네 두 명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뭐 별 것 아닌 이야기 같아 보여도, 내 나이가 되면 그런 이야기들이 늘어진 엿가락처럼 가슴에 와 닿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내 작은 골방에 앉아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그중에서 내가 평소에 못해 봤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러 가는 것이다. 사실 젊은 이들이 가는 커피숍에 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조차 한번 못해 본 것일까?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평소 구경만 하고 지나쳤던 그 커피집 앞에 다다랐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섰다. 어색한 마음에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커피숍 상황을 지켜봤다. 가만히 지켜보니 커피를 직접 계산하고 직접 가져가서 먹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어젯밤 연습했던 멘트를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 종업원 앞으로 다가갔다.


“아메리카노 커피 주세요.”

“어디서 드실 건가요?”

“네?”

“종이 잔에 드릴까요? 아니면, 머그잔에 드릴까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꼬치꼬치 묻는 걸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종업원 아가씨의 눈썹 한쪽이 씰룩 올라간다. 분명 짜증이 나는 얼굴이다.


“뭐든 상관없어요.”

“사이즈는요, 레귤러 사이즈로 드릴까요?”


이번에도 잠시 생각하려다가, 종업원 아가씨의 눈썹이 움직이기 전에 얼른 대답해야 할 것 같아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


“레귤러 사이즈 종이컵에 드릴게요. 4,100원입니다”


준비했던 5,000원을 내어 주니, 종업원은 다시 현금영수증을 할 건지 할인카드 적립을 할 건지 다시 꼬치꼬치 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종업원이 무심하게 내게 900원을 건넨다. 내 손에 900원의 동전이 떨어지자 식은땀도 함께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산대 주변을 배회하다가, 저쪽 끝 쪽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내가 주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행동이 이상하게 느려졌다. 허둥지둥 그곳에 다가가니 종이컵에 사약 같은 커피가 두둥실 떠 있다. 그 무시무시한 놈을 쟁반 위에 들고 아슬아슬 자리로 돌아오는 길……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내 손을 뒤덮었다. 큰일이다. 내가 사람들이 줄 서서 주문하기를 기다리는 바로 그 앞에서 그만 엎어지고 만 것이다. 가게에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나는 뜨거운 손보다. 뒤통수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종업원 하나가 걸레를 가지고 달려왔다. 내 손을 닦으며 괜찮은지 연신 물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엔 사람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저 할아버지 이런 곳 처음 왔나?’ ‘아, 할아버지 이런 곳엔 왜 오신 거야?’ ‘저럴 거면 그냥 집에 계시지……’ 종업원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창피함에 쫓겨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손과 낯 뜨거운 얼굴 때문인지 바깥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커피숍이 나를 보지 못하는 곳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커피숍이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마지막으로 돌았을 때, 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도 내게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안에 소심하고 약한 아이 하나가 자꾸 내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꾸만 나를 비난했다. 커피 한잔도 제대로 주문 못하는 쓸모없는 노인네라고.


그렇게 정신 줄을 놓은 채,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노인 복지센터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센터 앞에서 너무도 익숙한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무참히 실패했다. 지금 기분으론 그 커피숍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앞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뜨거운 커피와 입김에도 내 마음은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끝.


>>그 겨울의 찻집 노래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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