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고찰
(20대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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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정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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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도 모두들 잘 살아가겠지.
세상은 잘 흘러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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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들의 일상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봤다.
사고사가 아닌 자살한 경우가 나오더라.
강남 한복판의 건물에서 연탄가스냄새로 신고가 들어왔고
구급대원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을 했다.
'사고사는 당하는 거지만 자살은 죽기 전의 그 사람의 마음까지 생각하게 되어 더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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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젠가 나의 사람들이 지나가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나와 함께 있던 곳, 함께 들었던 음악,
내가 했던 말들이 그렇게 문득 다가오면 늘 아픔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 보잘것없어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빛이 아니라 아픔으로 삶에 남게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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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죽음을 생각하는 내가 내일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처음으로 오늘만 사는 내가 아니라 내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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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말한다.
'그러나 모순에 차 있는 것은 그들 자신과 이 세상의 한 측면만 보는 그들의 눈일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채 죽음을 초래할 사소하고도 우연한 사건이 발생하기만 고대한다.
...
사람들이 삶을 좀 더 소중히 여긴다면, 순간적인 것에 자신을 내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참고 견디며 살아갈 만큼 내면이 충실하지 못하다. 오히려 속이 텅 비어있다.'
백 년도 더 된 이 글이 현대에도 적용되는 일은 참 재밌지 않은가?
사람들의 삶의 모양이 생각이 어찌나 이리 같은지 생각하면 너무나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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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중 누군가가 늘 죽음을 생각한다면
살아가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늘 죽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을 이기고 오늘도 살아가는 누군가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지만 같은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기에 다른 결말이 나온다.
내가 죽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받는 느낌 때문이라 말한 적이 있다.
죽음으로 내버려진 사람들은 그럼 사랑받지 못한 것일까?
그들의 내면까지 내가 어찌 감당을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같은 생각을 하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나만 우는 게 아니고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나만 죽고 싶은 게 아니구나
100년 전에도 지금도 누군가는 삶의 끝에 서있다.
절벽 아래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고개를 들고 저 멀리를 볼 생각을 아예 못한 채
답답하다 느끼는 사람들은 왜 저 앞을 못 봐!
넓은 하늘도 넓은 저 숲과 멋진 호수도 왜 앞을 안 봐!
라고 소리칠 수 있지만
벼랑 끝에 선 자들은 그저 생각을 못하는 거다.
그들에게 보이는 건 그저 깊고 어둠으로 끝이 안 보이는 절벽 아래 죽어있는 상상 속 모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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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들은 갑자기 죽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티를 낸다.
분명 말을 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자책할 필요는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지키고 싶다.
내가 끝에 서있으니까 같이 서있자고
그러다가 혹시 괜찮으면 거기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서 앞을 보자고
같이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