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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매니저 Jul 05. 2022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등장인물이 MBTI를 한다면

자기보고식 답변 MBTI의 함정 

판교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한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주요인물 5명이 나온다.


- 아침마다 40분씩 스탠딩 회의에 지쳐있는 클래식 덕후 사회 초년생 김안나,

- 김안나와 업무로 티격태격하는 외곯수 개발자 케빈,

- 스탠딩 회의를 하려다가 40분동안 수다만 주구장창 떨어 직원들을 피곤하게 하는 수다스럽고 눈치없는 대표 데이빗

- 중고 거래 앱에서 하루에도 100개 넘게 신상품을 파는 의문의 유저 / 대기업 혜택기획팀 차장이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이지혜

- 20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며 SNS 인플루언서 병에 걸려버린 카드사 회장 조운범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겠다.

이들에게 MBTI를 시켜본다면, 확신의 E가 나올 사람은 누구인지. 

소설 내에서 이 사람은 E유형이라는 확정적인 근거가 나온 등장인물이 있다. 그게 과연 누구일까? 


초면의 김안나에게 붙임성 있게 점심도 사주면서 자기 이야기를 막힘없이 술술 푸는 이지혜?

수다스럽고 말이 많은 데이빗? 

SNS 인싸라는 자부심에 취한 조운범?


아무래도 다른 등장인물이면 몰라도 사교성도 소통력도 부족해보이고 개발을 하면서 혼자만의 세계에 골몰해 있는 케빈은 절대 답이 안 될 것 같다. 




의외겠지만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바로 케빈이다.

소설 내에서 '스스로를 외향적인 인물로 인지한다는 묘사가 나온 인물'은 케빈이 유일하다. 


그때 케빈은 카이스트 레고 동호회에서 삼년 동안 총무일을 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의 사회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대표 옆에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다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카이스트, 레고, 총무. 그 어느 하나도 사교적으로 들리지 않는데. 총무가 아니라 회장이라면 또 몰라.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이 세계에서 레고 동호회란 대체 뭐란 말인가. 크레이지 파티광쯤 되는 건가.
케빈의 시선이 내 운동화 쪽으로 향해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안나는 속으로 '풉'하고 생각하지만. 


카이스트 레고 동호회 총무 출신 케빈은 이 문항에  '동의'를 표할 것이다. 
케빈의 주관적 기준에는 역시 이 문항에 '동의'를 표할 확률이 높다.  그는 무려 3년이나 동아리에 열정을 다했다. 

나머지 등장인물에게는 이 등장인물이 스스로를 외향인으로 인식할지, 내향인으로 인식할지 묘사가 없다.

오히려 조운범이나 데이빗처럼 '자기 자신'에 빠져 있는 캐릭터는 스스로를 내향인으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 

외부의 그 어떤 자극보다 자기 안에 있는 스토리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여겨질텐데. 

(당장에 조운범의 모티브가 되었던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INFJ 유형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인지한다.

모든 관계가 거세된 상태, 오직 자기 자신만 있는 상태에서는 스스로를 인지하기 어렵다.

타인의 존재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케빈은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이 비교적 외향적인 존재라고 느꼈을 것이다.




MBTI 검사, 특히 가장 잘 알려진 16personalites의 질문은 하나의 질문 문항 속에 이중, 삼중 문항이 담겨 있다.그만큼 무엇을 묻는지 불확실하여, 답변자는 자신이 해석한 대로 질문에 답을 한다.


또한 '대개', '종종' 처럼 불분명한 부사가 질문 문항을 더더욱 흐릿하게 만든다. 

'거의'에 대한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다. '1년 365일 중 1번 / 1주일에 1번 / 하루 24시간 중 1번' 중 정확히 어느 정도의 수치인지 단언할수 있는가?' 


다들 각자가 느끼는 기준에 따라 답을 하다보면 이런 경우도 생긴다.

한 달에 1번 화를 내는 사람이 본인이 꽤 화를 낸다고 생각해서 '비동의'에 답을 할 것이고,  (→ F형)

반면 1주일에 1번 화를 내는 사람이 거의 화를 내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동의'에 답을 할 경우도 있다.  (→ T형) 

이런 문항이 태반이다.

이러한 답변의 누적으로,  객관적인 수치로 따지자면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전자가 외려 F형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 문항 역시, 오히려 공감능력이 평균 대비 높은 사람들이 때때로 남의 감정에 공감이 어려웠던 케이스를 현저하게 마음 속에 담아두며 '동의'에 체크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토록 문항부터가 불분명한 검사라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해주기 어려운 검사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항을 통해 얻어진 4개의 지표 조합 또한 신빙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MBTI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평소 자신에 대한 메타 인지가 약했던 사람,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생각해볼 겨를이 없던 사람은 MBTI 유형에 자기 자신을 끼워 맞추며 자기 성격을 하나의 틀에 고정시킨다.


어느 트위터리안이 지적했던 다음과 같은 현상처럼.


이전에는 사람들이랑 모임 갖는 것도 좋아하고 주도적으로 모임에서 활동을 갖던 사람도,

MBTI에서 I유형이 나온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외향형들 기빨려... 난 집에서 혼자 누워 있는게 좋아'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렇게 외부발 몇 마디 문장에 '아 난 그런 사람이지'라고 암시를 거는게 과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은 걸까?


통계에서 상관관계, 즉 두 변수 사이의 선형적 관련성(한 변수가 변할 때 다른 변수가 변하는 강도와 방향)을 수치로 표현할 때는 -1에서 +1까지 가능하다.

여기서 최대 상관관계가 0.30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자녀가 성격심리 검사에서 내향적 성향이 높게 나왔다고 해보자. 만약 아이가 새로운 여름방학 캠프에 가야 한다면 아이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는 보통 성격에 근거해 새로운 상황에서 보일 행동을 예상하지만 그 정도는 최대 0.30의 제곱인 0.09,

즉 9퍼센트(성격만으로 새로운 상황을 예측하는 단순선형회귀 모형을 고려한 경우로 이 모형의 설명력, 다시 말해 결정계수는 상관계수의 제곱인 0.09와 같다)이므로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인 생각처럼 개인 간의 성격 차이가 새로운 상황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는 힘은 크지 않다.

사람일까 상황일까 | 리처드 니스벳, 리 로스, 김호 저


참고로, MBTI 검사와 같은 유형 검사로 사람들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는 확률은 기껏해야 9%라고 한다.

MBTI에 너무 과몰입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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